김진휘 법무법인(유)율촌 중대재해센터 변호사
최근 대법원은 2025년 8월 14일 선고 2025도4428 판결에서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 ‘사업주’가 해야 할 안전·보건조치를 정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 제39조는 원칙적으로 제63조 본문에 따른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에 관해도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다만 제63조 단서에 따라 도급인의 책임 영역에 속하지 않는 보호구 착용의 지시 등 근로자의 작업행동에 관한 직접적인 조치는 제외된다”고 판시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도급인은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 및 제38, 39조에 따라 중첩적으로 부담하는 의무라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도급인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를 모두 직접 이행하지는 않더라도 동법 제66조 제1항에 따라 최소한 수급사업주에 의하여 그러한 안전조치가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산업안전보건법 제66조 제1항에 의해 수급사업주에게 해당 안전·보건조치를 취하도록 시정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관리·감독하고 불응 시에는 직접 이행할 의무가 있다(광주고등법원 2025. 2. 21. 선고 2022노329 판결).” 다만 근로자의 작업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조치에 대해서는 안전·보건조치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로자의 작업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조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해석돼야만 도급인은 본인의 사업장에서 수급인의 작업행동에 관해 어디까지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해야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형사처벌의 대상이자 중대재해처벌법상 이중의 인과관계의 매개가 된다는 점에서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의무의 한계는 실무상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내용이다.
그런데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제5조 제3항 제1호에서 건설공사현장에서 이뤄지는 업무를 근로자 파견 절대금지업무로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대법원에 따르면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제3자가 그 근로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그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직접 공동 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등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 참조).” 즉 도급인은 건설공사 현장에서 관계 수급인의 근로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 단서의 ‘근로자의 작업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조치에 대한 해석 역시 이러한 파견법과의 관계를 고려해 해석될 수밖에 없다. 파견법에 따라 애초부터 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서 도급인에게 안전조치를 이유로 하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기 때문이다.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도급인이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조치를 취하는 것은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하기 위한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므로 근로자 파견을 추정할 수 있는 징표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바 있다. 또 수급인 근로자의 안전보건의식 향상 및 산재예방을 위한 활동에 수급인 근로자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산안법상 조치가 아니더라도 수급인 근로자에 대해 근태관리, 업무지시·감독 등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당한 산업안전보건조치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고용차별개선과-2270, 2012.10.11.]. 그러나, 문제는 도급인이 관계수급인 내지 그 근로자에게 하는 지시가 어디까지 정당한 산업안전보건조치에 해당하고 어느 기준을 넘으면 파견법상 위법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에 해당하는지다.
예를 들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38조는 사업주가 일정한 작업에 대해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 중 차량계 하역운반기계 등을 사용하는 작업을 예로 든다면 작업계획서에는 관계수급인의 '작업방법'이 기재돼야 한다. 또 위험성평가에서 명시한 위험성 감소 대책도 관계수급인의 근로자들의 작업방법에 대한 내용이 상당 부분 명시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작업방법이란 근로자의 작업행동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도급인이 이를 단순히 점검 내지 확인하는 지위에 있다고 해도 관리·감독에 따른 직접 이행의 명목으로 관계수급인의 근로자에게 작업방법에 대한 지시를 하기 시작한다면 대법원이 근로자파견에서 말하고 있는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와 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차례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및 재판에 참여하면서 느낀 바에 의하면 고용노둥부 근로감독관과 경찰 수사관은 중대산업재해 수사 과정에서 원청의 관계수급인에 대한 관리가 미비한 점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2025. 9. 15.자 노동안전 종합대책에서 원청의 안전 예방 의무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도급인이 안전보건관리체계라는 형태로 관계수급인에 대한 통제의 강도를 높일수록, 관계수급인은 도급인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다. 결국 도급인의 입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를 준수하다가 파견법에 위반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아리셀 사건에서 불법파견이 중형에 대한 양형 조건으로 제시된 만큼 건설사에게는 묵인하기 어려운 문제다.
근로자의 작업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조치에 대한 해석은 실무 현장에서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도급인이 과연 어디까지 확인해야 하는 것인지(확인의 범위) ▲도급인은 얼마나 수급인의 안전조치가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점검해야 하는 것인지 수급인의 작업 현장에 상시 상주하여 마치 도급인의 근로자와 같이 관리해야만 한다는 것인지(점검의 수준) ▲점검을 통해서 관계 수급인에게 어디까지 지시할 수 있다는 것인지(지시의 한계) 이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실무에서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