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태 법무법인(유)율촌 중대재해센터 변호사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기업의 경영책임자까지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종사자들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법적 책임이 부여됐고 이를 위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부과되는 형사책임도 과거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의 양형에 비해 대폭 강화했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돼 유죄가 선고된 사례들은 거의 징역형에 해당한다. 이 점은 과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과 비교할 때 양형이 매우 상향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로 유죄가 선고된 모든 사건에서 징역형이 선고되는 것은 아니고 드물게 벌금형이 선고된 사례도 일부 발견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법원이 징역형을 피하고 벌금형을 선고한 이유는 다른 유죄 사건들에 비해 상당히 경미한 처벌을 받게 된 셈이다. 기업이 위와 같은 법원의 양형을 살펴보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위반으로 인한 리스크가 현실화됐을 때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수립하기 위한 측면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 이에 본 기고에서는 벌금형을 선고받아 징역형을 피하게 된 대표적인 4개의 판결 사례가 양형 이유에서 시사하는 바를 전달하고자 한다.
▲청주지방법원 2024. 9. 10. 선고 2023고단1464 판결
공장에서 크레인 오조작으로 탈사기와 본체 사이에 근로자가 협착돼 사망한 사건이다. 대표이사이자 경영책임자인 피고인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로 기소됐고 법원은 이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법원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안전구역 밖으로 이동한 과실이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점을 양형 이유로 고려했다. 또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안전 확보를 위한 별도의 조치들을 이행한 점,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시스템 강화 등을 추진한 점, 이 사건 사고를 계기로 안전 확보에 더욱 힘쓸 것을 다짐하였던 사정 등이 매우 긍정적으로 고려됐다. 나아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불과 2개월 만에 발생한 사고였기 때문에 안전보건확보의무를 단기간 내에 이행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정도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됐다. 결국 피고인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래 최초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었다.
▲ 광주지방법원 2024. 9. 26. 선고 2024고단1482 판결
이 사건은 공장에서 무면허 지게차 운전자가 후진 중 다른 근로자를 들이받아 사망한 사건이다.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로 기소된 경영책임자는 유죄를 선고 받았지만 1심에서 5000만 원의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벌금형이 선고될 수 있었던 유리한 양형에는 피해자의 상당한 과실, 유족과의 합의(처벌불원의사의 표시)가 포함됐다. 그러한 이러한 사정만으로 징역형을 피한 것은 아니다. 회사가 나름대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더욱 힘쓸 것을 다짐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사정이 반영된 결과였다. 실제로 회사는 지게차 면허 보유자가 4배 정도 증가했고 원청으로부터 산업안전개선우수업체로 선정된 사실도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7. 9. 선고 2024고단5503 판결
오피스텔 신축 공사 현장에서 크레인과 H-beam 철골에 연결되어 있던 슬링벨트가 끊어지면서 H-beam이 낙하해 작업자가 사망한 사건에서도 법원은 원청 경영책임자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하청 경영책임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 특히 법원은 피고인들이 평소 재해예방을 위한 안전관리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사정, 실제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안전관리교육이나 순회점검 등의 조치가 이루어져 온 사정 등을 양형이유에 매우 긍정적으로 반영해 다른 유사 사건과 비교할 때 비교적 경미한 벌금형을 선고했다.
▲의정부지방법원 2025. 11. 4. 선고 2025고단822 판결
중학교 화장실 개선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가 이동식 비계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경영책임자에게 벌금 1000만 원이 선고됐다. 가장 최근에 선고된 벌금형 사례임과 동시에 기존의 벌금형과 비교할 때 경영책임자에게 선고된 벌금형 중 가장 경미한 액수가 선고된 사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법원이 이 사건에서 경영책임자에게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선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법원은 피고인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점과 피해자의 유족과 원만하게 합의한 사정을 유리하게 고려했다. 나아가 이 사건 사고 발생 직후 관련 법규에 따라 사업장 전반에 대한 안전조치의무를 이행하는 등 추가적인 산업재해 발생의 방지를 위해 성실히 노력해 온 점을 인정해 이를 모두 양형에 반영했다. 신속하고 성실한 재발 방지 대책의 이행은 유리한 양형이유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라는 점이 위 판결을 통해서도 재확인됐다.
앞서 선고된 벌금형 판결례가 시사하는 유리한 양형 요소는 크게 3가지다. 첫째는 유족과의 합의다.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으로 고려되는 유리한 양형요소로서 벌금형 선고사례에서도 빠짐 없이 고려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사고 전부터 안전보건시스템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사고 이후에는 안전보건시스템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조치하는 것이다. 특히 사고 후 피고인들이 강화된 안전관리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재발 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조치한 사정은 유리한 양형으로 적극 고려될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이 경영책임자가 실질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 등의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이행하여 중대재해를 예방하려는 데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사정은 무거운 형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방안이 된다. 셋째는 실형 선고 사례와 비교할 때 더욱 뚜렷해지는데 바로 경영책임자의 과거 전과 내지 동종 사고의 재발 여부다. 피고인들이 과거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거나 동종 사건에서 재발이 없었다면 그만큼 벌금형 선고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물론 유리한 양형요소로 고려될 수 있는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노력은 중대재해 예방을 통해 안전보건경영을 실천하겠다는 진심과 결연한 의지가 담긴 산물이어야 할 것이다. 또 1심 판결에서 벌금이 선고되었다고 해 안일하게 재판에 임해도 안 된다. 통상 무죄 판결이나 경미한 벌금형에 대하여는 검사가 항소를 제기해 상급심에서 재판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발생한 사고 발생 자체는 되돌릴 수 없더라도 사고의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여 재발방지대책의 실효성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경미한 판결을 선고 받더라도 상급심 재판에서 중형으로 파기되거나 또 다른 사건에서 더 큰 중대재해 리스크로 직면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앞서 소개한 광주지방법원 2024. 9. 26. 선고 2024고단1482 판결은 1심에서 벌금형이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는 해당 사고가 사업장에 만연했던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사고라는 점, 근로자의 생명은 산업현장의 생산성 또는 경제성과 저울질하거나 그에 따라 양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피고인에게 선고된 벌금형을 파기하고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형을 가중하기도 했다.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의 실질적인 운영을 위해 얼마나 진정한 자세로 성실히 노력하여 왔는지는 가장 유리한 양형이유 중 하나로 고려돼 당장의 사법 리스크 감소에도 기여하지만 무엇보다 안전투자를 확대해 재해의 원인 자체를 개선하는 산업재해의 예방을 위한 촉매로 작용하게 한다. 이점을 고려해 근본적인 개선 대책의 마련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법원이 벌금형이 선고된 판결을 통해 기업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간결명료하다. 사고 발생 전부터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할 것을, 사고가 발생한 후에는 컴플라이언스의 관점에서 실질적인 개선 조치를 이행하는 진정성 있는 대응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