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안전을 경시하고 기업이윤에만 몰두하다가 중대재해 사망사고를 일으킨 기업 대표에게 15년의 중형을 선고, 기업전반에 경종을 울려주는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지난해 6월 23명의 근로자가 숨진 화재참사로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그의 아들(운영총괄본부장)에게 9월 23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박 대표 부자(父子)에게 내려진 징역 15년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형이다. 여태껏 최고형은 징역 2년에 불과했고 평균 형량도 1년 남짓이었다. 실형선고도 10건 가운데 1건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번에는 확연히 달랐다. 재판부는 “언제터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던 예고된 인재였다”는 점을 판결문에 분명히 적시했다.
재판부는 회사 쪽 주장처럼 “예측 불가능했던 불운한사고가 아니다. 사망한 피해자들이 평소 리튬 1차 전지폭발위험성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불이 난 뒤 신속히 대피하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쳤다. 화재사고 직전에 이미 폭발사고라는 중요한 전조현상이 있었는데도 대비 없이 생산 공정을 이어간 것도 ‘안전불감증’과 다름없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18명의 유족과 합의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처벌을 내린 점도 의미가 크다. 통상 유족합의는 감형요인으로 작용하는 일이 관습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기업이 안전·보건비용을 최소화하다가 산재가 발생하면 유족과 합의하고 결국 이를 통해 선처를 받는 악순환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불법파견 사업주에게도 이례적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산재사고를 유발하는 고용구조의 문제도 분명하게 짚었다. 화재참사 피해자 중 20명이 불법파견 노동자였고 비숙련 자들이 다수 투입된 게 대규모 인명피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번 판결은 기업의 ‘안전불감증’을 끊어내는 분기점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법조계는 ‘징벌적 중형’이라고 평가한 반면, 노동계에선 형량이 낮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양형기준 신설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중대재해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물론, 산재사고 예방을 어렵게 만드는 불법파견 근절 등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