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태 법무법인(유)율촌 중대재해센터 변호사
사회가 복잡해지고 법적 분쟁이 다양화될수록 동일한 법률적 쟁점이라도 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커진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이라는 두 가치를 조화롭게 추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상급심을 통해 판결의 오류를 시정할 기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사건의 우연한 배당이나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이뤄진 불측의 판결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법적 안정성과 사법 신뢰를 훼손하고 나아가 사회통합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이에 우리나라는 법령의 해석·적용의 통일을 통해 법적 안정성과 재판의 적정성 및 공정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권리구제를 두텁게 도모하기 위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를 대법원을 정점으로 하는 3심제를 기반으로 다툴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그렇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사건의 1심 판결들은 어떻게 됐을까? 필자는 지난 상급심 판결 동향 분석(1편)의 기고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정확한 법리 분석을 위해서는 상급심 판결의 동향을 함께 파악하는 것이 필수 관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사건도 위와 같은 사법 제도의 틀 안에서 법원의 재판을 통해 법리가 구체화되는 만큼 3심제를 기반으로 한 상소제도의 적용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지 어느 덧 3년 6개월이 훌쩍 지났고 그 사이 2025월 8월 31일자 기준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돼 기소된 사건 중 법원이 선고한 1심 판결은 약 65건 이상에 이른다. 본 기고에서는 이렇게 선고된 1심 판결들이 과연 상급심에서는 어떻게 결론이 뒤바뀌었는지, 얼마나 많은 판결이 확정됐고 또한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인지 가장 최신의 상급심 판결의 동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현재까지 선고된 전체 1심 판결 중 1심으로 확정된 사건, 즉 검사나 피고인의 항소가 제기되지 않아 1심 판결의 선고를 끝으로 종결된 사건은 약 20건에 이른다(2025. 8. 31.자 기준). 전체 판결 중 약 30%의 판결들은 항소조차 제기하지 않고 1심 판결만으로 확정된 것이다. 1심 판결로 확정된 사건들은 대게 공소사실의 자백과 함께 변론 종결돼 재판이 여러 차례 속행되지 않거나 법리적인 다툼이 치열하지 않았던 점이 관찰된다. 이러한 사정에 비춰 보면 피고인의 입장에서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가장 주된 사정 중 하나는 이미 공소사실을 모두 자백하여 법원의 선처만을 바라는 상황에서, 1심 판결이 선고한 형이 감내할 수 있을 수준이라고 생각하거나 상급심을 통해 더 이상의 감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현실적으로 항소 자체를 포기한 경우로 보인다.
나머지 1심 판결 중 70%의 사건들은 모두 항소가 제기돼 약 18건의 2심 판결이 선고됐다. 그 중 5건은 대법원으로 상고가 제기됐고 나머지 13건의 판결들만 2심 판결로 확정됐다. 2심 판결로 확정된 사건들은 검사는 형이 너무 가볍다고 봐, 피고인들은 형이 너무 무겁다고 보아 항소를 제기한 사건이 대부분이다. 항소심 법원이 1심 판결의 양형에 대해 판단할 때는 “기본적으로 제1심과 비교하여 양형의 조건에 변화가 없고 제1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이를 존중함이 타당하다는 법리(대법원2015. 7. 23. 선고2015도326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에 따라 심리가 이뤄진다. 따라서 항소심 법원은 위 법리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위반에 대한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한 항소를 대부분 기각했다. 물론 2심 판결 중에는 많이 발견되지는 않지만 양형에 참작할 사정이 적극적으로 반영돼 1심보다 감형된 사례도 일부 확인된다. 예컨대 경영책임자임과 동시에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되어 확정된 사건, 1심에서 법인에게 인정된 벌금이 일부 감액되어 확정된 사건도 있다. 특히 항소심 법원은 "원심에서는 물론 당심에 이르기까지도 재해방지를 위한 조치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하는 등 1심뿐 아니라 2심에서도 범행 후의 정황, 즉 회사가 사후에도 얼마나 안전보건경영시스템과 컴플라이언스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였는지 여부를 고려하고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위반이 문제된 사건에서도 검사 역시 피고인의 형이 너무 가볍다고 항소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유의하면서 항소를 제기한다고 하여 감형이 되리라고 쉽게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항소심 판결로 확정된 사건 중에서는 검사의 양형 부당 항소(피고인의 형이 너무 가볍다는 취지)가 이유 있다고 보아 1심보다 형이 가중된 사례도 확인된다. 이처럼 가중된 사건에서 법원은 “근로자의 생명은 산업현장의 생산성 또는 경제성과 저울질하거나 그에 따라 양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중략)...피고인과 피고인 회사에 지속적인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미래의 산업재해를 예방하여 근로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피고인을 보다 엄중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하면서 1심의 벌금형을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가중하였다. 또 가장 최근 선고된 2025년 8월 27일자 항소심 판결은 경영책임자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여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고 법인의 벌금 역시 1억 원에서 5억 원으로 5배 가중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취지를 고려할 때 엄히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1심이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향후 항소심과 상고심을 통해 어떻게 판단될 것인지 여부도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1심 판결의 무죄는 6건에 이르는데(2025. 8. 31.기준), 모두 검사의 적극적인 항소로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바꿔 말하면 언론을 통해 익숙하게 접한 무죄 판결 중에 확정된 사건은 아직 단 1건도 없다는 뜻이다. 6건의 판결 중 2건은 건설공사 금액이 50억 미만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 유예된다고 보아 선고된 무죄 판결인 반면에 나머지 4건의 판결은 1심이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한 사건(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의 무죄)이다. 모두 2심 판결에서도 검사와 변호인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다만 6건의 판결 중 2건은 항소심 공판이 한창 진행 중이지만, 나머지 4건의 판결은 아직 항소심에서 제1회 공판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이다. 1심 무죄 판결의 상급심 재판이 다소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무죄 판결의 상급심 판결이 어떤 법리를 설시할지, 1심 결론을 유지할 것인지 여부는 아직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대법원을 통해 진행되는 상고심은 단순한 권리구제를 넘어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통일적인 법령의 해석 및 적용을 통해 구체적인 법리 발전의 촉매 역할을 한다. 또 사실상 법원(法源, Source of Law)의 기능을 수행해 모든 하급심 재판의 실무를 실질적으로 구속하는 만큼 향후 대법원을 통해 확정되는 중대재해처벌법 판결이 축적되는 것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다만 아쉽게도 아직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과 관련하여 문제되는 다양한 법적 쟁점들이 대법원을 통해 법리로 구체화 되려면 역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2심 판결 중 대법원으로 상고가 제기된 사건은 5건이다.
그 중 3건의 대법원 판결이 확정됐고(2025. 8. 31.자 기준), 나머지 2건은 진행 중이다. 3건의 대법원 확정판결 중 구체적인 법리를 설시한 판결은 유일하게 1건이다.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가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 및 업무상과실치사죄와 상상적 경합(사회관념상 1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위 각 죄들이 모두 성립하나 그 중 가장 무거운 중대재해처벌법위반으로 처벌된다는 의미)에 해당한다는 죄수에 관한 법리만 설시 됐을 뿐이다. 즉, 중대재해처벌법에 특유한 구체적인 법리가 아직 대법원을 통해 충분히 설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현재 진행 중인 2건의 대법원 사건들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안전보건조치 의무 또는 안전보건확보 의무의 위반 여부, 인과관계 및 예견가능성, 고의 등의 구성요건을 적극적으로 다투었던 사건이다. 따라서 상상적 경합이라는 죄수에 관한 첫번째 법리에 이어 향후 대법원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 특유한 법리를 설시 하는 새로운 상고심 판결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나머지 2건의 대법원 확정 판결 중 1건은 사실인정을 다투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 상고를 기각한 사건이고 다른 1건은 사형, 무기,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보다 가벼운 형이 선고되어 형이 무겁다는 취지의 양형 부당을 이유로 상고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모두 상고기각으로 확정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특별형법의 성격을 갖는 이상 형사법의 원칙이 중요하게 관철돼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완벽한 무결점의 법률도 아니다. 부족한 부분은 법리의 발전을 통해 채워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단기간에 이뤄질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법원을 통해 판결들이 계속 축적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에 특유한 구체적인 법리를 형성해 나갈 것이다. 법원의 판결들이 상급심을 거쳐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을 조화롭게 도모하면서 ‘종사자의 생명 및 신체 보호’라는 법의 입법취지를 현장에서 구현하는데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