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오 법무법인(유) 율촌 중대재해센터 전문위원

건설재해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숙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정면으로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지난 2월 천안 고속도로 교량 붕괴 사고로 4명이 목숨을 잃었고 4월에는 광명 지하철 공사 현장이 무너져 노동자가 매몰되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발생한 이 참사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현장의 무관심, 기업의 이윤 중심 경영, 제도의 허술함이 만들어낸 구조적 비극이다. 

우리나라 건설업 종사자는 약 250만 명, 가족까지 고려하면 1000만 명에 달한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의 생계가 건설업에 걸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산업 속에서 매일 아침 출근한 노동자가 저녁에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경영 책임을 묻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처벌을 피하기 위한 형식적 안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공사비 5억 원 미만의 소규모 현장은 법의 보호망에서조차 벗어나 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처벌만으로 재해를 막을 수 있는가?”

싱가포르의 사례는 다르다. 위험이 감지되면 정부가 즉시 ‘Safety Time-out’을 발령해 현장을 전면 중단시키고, 철저한 점검 후에야 공사를 재개한다. 단순히 사고 뒤에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행정이 사전에 안전을 강제하는 구조다. 우리도 이러한 예방 중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대한민국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직 미흡한 수준이지만 사업장에서 작업 전 사고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위험성 평가가 이뤄지도록 하고 현장의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비롯한 각종 안전예산의 편성과 집행을 의무화하며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을 포함하여 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에 대한 비상대응매뉴얼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점검과 기술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다. 건설현장의 산업안전보건관리비에 한정하여 보더라도, 발주자로 하여금 일정 기준의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계상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계상된 금액 이상으로 지출이 발생하는 경우 보전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는 건설기술진흥법상의 안전관리비도 마찬가지다. 즉 공사 기간이 연장되거나 설계가 변경돼도 위 안전관리비가 추가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안전모 하나, 안전망 하나가 줄어들고 그 빈자리는 노동자의 생명으로 채워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첫째, 양적인 측면에서 공사 기간이 늘어날 경우 안전관리비의 추가 반영이 의무화돼야 하고 안전관리비 항목을 폭넓게 인정해 안전관리비가 실질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둘째, 질적인 측면에서 안전관리비가 목적 외로 사용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감시와 감독 역시 필요하다. 지금처럼 서류상으로만 ‘안전교육’, ‘보호구 구입’으로 처리되는 방식으로는 결코 현장을 바꿀 수 없다. 원청과 발주처가 책임을 회피하는 관행을 끊고 안전관리비가 실제로 안전망, 추락 방지 설비, 실질적 교육 등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데 쓰이는지 검증돼야 한다. 

셋째, 구조적 측면에서 드론, IoT 센서, AI 기반 스마트 안전 시스템을 모든 현장으로 확대해 사고를 사전에 차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스마트 안전 시스템을 위한 안전관리비가 향후 더욱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  

건설재해는 특정 노동자의 불운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다. 250만 노동자가 오늘도 무사히 퇴근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다. 

이제는 분명히 답해야 한다. 건설재해를 막는 길은 단순한 처벌 강화가 아니다. 충분한 안전관리비 확보와 그 사용에 대한 철저한 감시, 여기에 예방 중심 제도의 정착이 병행될 때만 비극은 멈출 수 있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생명이다. 그리고 그 생명을 지키는 데 있어 단 한 푼의 예산 삭감도 허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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