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순 재단법인 피플 이사장/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

최근 건설현장에서 잇따른 사망사고로 정부는 반복 사고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영업정지를 요청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건설업계도 영세 현장과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안전센터를 설치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는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산업사고는 복합적인 원인에서 비롯되며, 일부 주체의 노력만으로는 근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흔히 “작업자가 안전수칙을 잘 지키고,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인간의 주의력이 무한하고 완벽하다는 착각을 전제로 한다. 현실에서 인간의 인지능력과 주의력은 언제나 한정적이며, 다양한 요인에 의해 쉽게 흔들린다. 사람의 인지능력이나 주의력은 항상 불안전한 상태이다. 인간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거나, 지나치게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여 변화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특정 업무에 집중하는 동안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날 때 주의력은 크게 저하된다. 또한 과로나 스트레스 등 육체적, 정신적 문제가 있거나, 작업환경의 변화가 있을 경우에도 인간의 인지능력이나 주의력은 영향을 받는다. 이를테면 장시간 근무와 교대근무로 인한 피로, 개인의 스트레스와 심리적 부담, 소음·진동·조명 같은 작업환경, 단순 반복 작업의 지루함, 혹은 지나치게 복잡한 업무로 인한 정보 과부하까지 모두 주의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 인간의 확증편향과 같은 편향도 인간의 오류나 주의력에 영향을 준다. 여기에 “빨리 끝내라”는 압박은 사고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이러한 인간의 한계는 실제 사고로 이어진다. 2022년 경남의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서는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다이캐스팅 기계에서 20초간 다이가 열리는 기간에 금속 찌꺼기를 제거하던 근로자가 기계에 끼어 숨졌다(자료 안전공단 2024 중대재해 사고백서). 어떤 건설현장에서는 숙련 근로자가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에 열중하다 발을 헛디디어 추락했다. 어느 물류센터에서는 피로가 누적된 지게차 운전자가 순간적으로 부주의해 동료와 충돌했다. 이를 단순히 ‘부주의’로만 설명하기에는 인간 주의력의 본질적 한계를 간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첫째, 공학적 기술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기계와 설비에는 자동 차단 장치, 이상 감지 센서, 경보 장치 등을 갖춰야 한다. Fail Safe와 Fool Proof 같은 시스템, 추락 방지 장치, AI 영상 감지 기술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둘째, 구성원 전체의 잠재위험 인지능력과 주의력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여 업무 안전수행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셋째, 교대제 개선과 충분한 휴식 보장, 작업환경 관리 등을 개선하여 피로와 스트레스, 지루함 등을 줄인다. 넷째, 조직의 수행능력 중에 존재할 수 있는 잠재적인 약점을 파악하여 보완하고, 조직 문화를 개선한다. “속도보다 안전”을 우선하는 분위기 속에서 실수를 개인의 탓이 아니라 시스템 차원에서 보완하도록 한다. 다섯째, AI와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스마트 안전모와 웨어러블 기기로 작업자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AI 영상분석으로 위험 행동을 즉시 감지하는 체계를 갖추도록 한다.

안전보건관리의 출발점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데 있다. 완벽한 인지능력이나 주의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인간의 한계를 전제로 한 안전 시스템을 설계하고, 인간의 업무 안전수행능력을 향상해야 한다.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이라는 말이 사라지는 현장, 개인의 주의력에만 의존하지 않는 체계적 안전망이 구축될 때 비로소 산업재해는 줄고, 안전은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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