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법무법인(유)율촌 중대재해센터 변호사

2018년 12월 11일 태안화력발전소 故 김용균 씨 사망사고를 계기로 산업현장에서의 중대재해사고를 줄이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2019년에 전면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과 2021년에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기본적으로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또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규제와 처벌의 강화를 통해 중대재해 사고의 발생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025년 현재 중대재해 사고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최근 P사에서 중대재해 사고가 반복해 발생하자 정부는 건설관계법령상 행정제재 및 국가(지방)계약법령상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강화하는 제도개선과 함께 위험의 외주화 방지 차원에서 불법하도급 현장조사를 통한 강력한 제재까지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는 2인 이상의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에 건설관계법령상 영업정지와 국가(지방)계약법령상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부과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1인 사망의 경우에 대해서도 영업정지 및(또는)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부과하게 될 것이 확실시되는 한편 불법하도급에 대한 감시와 제재도 대폭 중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주(법인) 입장에서는 중대재해사고발생에 따른 형사처벌 보다 해당 영업 및(또는) 공공발주를 제한당하는 것이 휠씬 더 직접적이고 치명적이다. 따라서 중대재해사고와 관련된 행정제재를 대폭 강화하게 되면 사업주에 의한 중대재해 방지효과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중대재해 사고발생의 원인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사고발생의 구체적인 원인에 대한 분석과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사업주에 대한 제재와 처벌의 강화만으로는 중대재해사고 발생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는 없다. 

실제 대한민국의 중대재해 사고의 원인은 크게 3가지로 대별된다. 

첫번째는 환경구조적인 요인이다. 발주자가 설계∙감리∙시공 등과 관련한 적정계약금액과 적정계약기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애초에 안전과 품질은 환경구조적으로 담보될 수 없다.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면 당장 기업을 영위할 수 없는 업체들은 불나방처럼 앞뒤 안가리고 입찰에 참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대형턴키공사입찰에서 공공발주기관이 해당 사업을 이행하는데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지 않은 상황을 타개하기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고 불완전한 기본계획을 제시하면서 제대로 된 설계에 따른 거액의 후속공정 공사비까지 설계시공업체가 부담하도록 해 문제가 되고 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안전과 품질을 보장하는 시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개별 시공행위에 대한 제대로 된 감리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인력과 비용, 권한이 주어지지 않으면 절대 안전과 품질을 보장하는 감리업무 수행을 기대할 수 없다.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은 건설공사발주자에 대해 건설현장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설계·시공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적정한 비용과 기간을 계상·설정해야 한다는 의무를 명시(산업안전보건법 제67조 제3항)하고 있고 공공계약 관련해서는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을 무효로 하는 내용의 법률 규정(국가계약법 제5조 제4항, 지방계약법 제6조 제3항)과 도급계약의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는 그 부분에 한정하여 무효로 하는 법률 규정(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하도급법 제3조의4)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제한하는 특약의 효력을 부정하는 법령규정만으로는 적정 계약금액과 계약기간이 보장될 수는 없다. 이에 2025년 7월 1일 발의된 건설안전특별법안의 경우에는 발주자에게 설계·시공·감리자의 안전을 우선 고려한 비용과 기간을 제공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하는 한편 발주·설계·시공·감리자가 사망사고에 연루되면 최대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형사처벌 부과 근거규정까지 포함하고 있다. 

두번째는 사업주(기업)의 탐욕이다. 모든 사업주(기업)는 이윤극대화를 추구한다. 기술혁신이나 적법한 공법변경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작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까지 원가를 절감하는 것은 형사적으로는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및 건설산업기본법을 비롯한 각종 건설관계법 위반에 해당하고 민사적으로 계약불이행 및(또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세번째는 현장근로자의 고령화와 외국인 근로자의 증가에 따른 사고위험의 증가이다. 고령의 현장근로자의 경우 제대로 된 안전보건조치가 이뤄진 상황에서도 신체기능상의 문제로 재해를 당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고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에는 소통의 한계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아차사고 발생빈도가 높다. 사업주의 노력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중대재해사고 발생위험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노동시장의 한계를 고려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실제 중대재해사고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위와 같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의 산물이다. 이는 사업주에 대한 규제와 처벌의 강화만으로는 중대재해사고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기를 보이는 대로 때려 잡는 방법만으로는 모기를 근절할 수 없다. 모기가 자라는 웅덩이를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 

중대재해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적정계약금액과 적정계약기간을 보장해주는 근본적인 제도개선과 노동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OSC, 위험작업을 기계나 로봇으로 대체)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근로자의 안전을 충분히 보장해 주는 환경과 여건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사고를 막지 못한 사업주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규제와 처벌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자연사(병사)를 제외한 모든 유형의 사고사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수립함에 있어서는 압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의 자살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23년 현재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8명에 달한다, 이는 OECD 평균(약 11명)의 두 배 이상이며, 자살률이 가장 낮은 국가인 그리스와 터키(4.5명)의 5배에 이르는 심각한 수준이다. 연령별 자살률을 살펴보면 60대가 가장 높고 남성의 자살률은 여성의 약 2.4배이다. 공교롭게도 2023년 기준 중대재해 사망자(대부분 남성) 연령대를 살펴보면 60세 이상이 40%에 달한다. 위와 같은 통계결과는 작업현장에서 안전장구 착용과 안전수칙 준수를 아무리 강조해도 근로자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에 중대재해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현장근로자들이 느끼는 삶의 고단함과 내면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외로움과 절망감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이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결국 사업주에 대한 규제와 처벌의 강화는 일시적으로 중대재해사고를 줄일 수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안전과 품질을 담보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기업에 대한 규제와 처벌의 강화는 현재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 처해있는 대한민국 국가경제의 몰락을 초래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석양이 아름다운 건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해가 지면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권리가 있다. 따라서 정부는 안전과 품질을 담보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마련하는 정책과 제도를 수립하고 발주자와 도급인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피하는 방법에 집중하기에 앞서 작업현장의 안전과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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