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철 법무법인(유) 율촌 중대재해센터 변호사

지난 기고(5) 이후에도 법원은 계속하여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다수의 판결들을 선고했다. 최근 파악된 판결들까지 합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현재까지 약 46건 이상의 1심 판결이 선고됐고 그 중 알려진 유죄 판결은 41건, 무죄 판결은 5건에 이른다(2025. 6. 30.자 기준). 이에 본 기고에서는 지난 기고 이후 새롭게 선고된 판결들 중 특히 주목할 만한 판결들을 중심으로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의 판결이 시사하는 바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기고 이후 새롭게 추가된 무죄 판결은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은 하수관거 정비사업 공사현장 배관공사에 참여하던 하청 소속 재해자가 흙막이 지보공이 철거된 상태에 있던 굴착 장소에 들어갔다가 흙이 무너져 매몰되어 사망한 사건에서 2025. 5. 16. 원청(도급인)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위반(산업재해치사),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죄에 대하여 모두 무죄를 선고하고 하청에 대하여만 유죄를 인정했다(하청은 중대재해처벌법으로는 적용대상이 아니어서 기소되지 아니함). 법원은 원청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제3호의 유해위험요인 및 확인 개선 절차 의무를 이행했고 동법 시행령 제4조 제5호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평가 의무는 위반한 점이 인정되나, 사망 사고와의 상당인과관계 및 예견가능성이 없다고 봐 중대재해처벌법위반(산업재해)치사죄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까지 선고된 판결 동향을 종합해보면 원청과 하청의 유, 무죄의 결론이 대부분 함께 가는 경우가 많았다. 원청과 하청의 책임이 사실상 동일하게 취급돼 왔기 때문에, 원청에 대하여만 전부 무죄가 선고된 위 판결은 외관상 이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살펴보면 위 판결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법리를 설시한 것이 아니라 죄형법정주의 및 책임주의 원칙 등의 당연한 형사법의 원칙을 재확인해 준 것이다. 원청이 그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고 사고 발생에 예견 가능성이 없다면 하청의 유죄가 인정된다고 해서 당연히 함께 형사 처벌된다고 볼 수는 없다. 위 판결이 현장에서 원청의 충실한 의무이행을 이끌 강력한 유인 내지 동력으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한편, 유죄 판결이 선고된 판결들에서도 유의미한 법리가 설시 됐다. 대전지방법원은 2025. 6. 13. 열사병에 관해 최초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여 유죄를 선고했다. 경영책임자가 처벌될 수 있는 중대재해 유형의 범위가 확대된 셈이다. 또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축사 지붕 개폐 설비의 와이어로프 교체작업을 수행하던 하청 소속 근로자가 탑승한 고소작업대에서 균형을 잃고 추락하여 사망한 사건에서, 2025. 5. 14. 건설공사발주자의 판단에 관한 법리를 설시하면서 원청 및 하청에 대하여 유죄를 선고했다. 즉 원청은 축산업 등을 영위하는 조합(법인)으로서, 위 공사가 건설공사에 해당해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공소사실을 부인했는데 법원은 원청이 단순한 건설공사발주자를 넘어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도급 사업주가 해당 건설공사에 대해 행사한 실질적 영향력의 정도, 도급 사업주의 해당 공사에 대한 전문성, 시공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규범적인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는데(대법원 2024. 11. 14. 선고 2023도14674 판결), 위 법리가 그대로 원용되어 피고인(원청)의 주장을 배척되는 논거가 됐다. 위 사건은 현재 피고인의 항소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법리적으로 다툼이 치열한 쟁점이므로 항소심의 판결을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판결례가 쌓일수록 기업의 안전보건 경영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더군다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막을 수 있는 재해에는 엄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메시지가 강조되고 안전에 대한 국민적인 컨센서스도 더욱 발전하고 있다. 재해가 발생하지 아니하기를 바라는 ‘요행’에 기댈 것이 아니라 경영진부터 현장의 작업자까지 모든 구성원이 재해 예방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이 곧 중대재해처벌법의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대응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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