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법무법인(유)율촌 중대재해센터 공인노무사
최근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감소 문제는 국가적 위기를 넘어 기업경영의 핵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더 이상 인구구조 변화는 정책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으며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인사담당자의 목소리는 기업 내부의 가장 현실적인 고민을 반영한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다수의 기업들이 ‘인구감소 시대의 인사 전략’, ‘고령 인력 활용 및 대응 방안’ 등을 주제로 사내 교육과 전략 재설계에 나서고 있다. 동시에 AI 기반 업무 수행, 자동화 설비 도입, 안전관리의 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기술이 비즈니스 전략으로 시도되고 있다. 특히 안전관리 영역에서는 AI를 활용한 위험예측, 디지털 기반 교육, 협력사 관리 자동화 등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 기반 대응은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두고 있으나 기술적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핵심적인 변화는 사람의 문제다. 인구감소는 단순한 수의 감소를 넘어 현장을 구성하는 ‘인력의 특성과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며 새로운 리스크를 발생시키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종사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경영책임자에게 일정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형사책임을 묻는 강행규범이다. 하지만 이 법이 다루는 ‘위험’은 더 이상 전통적인 유해 설비나 물리적 환경에 한정되지 않는다. 고령화, 외국인 의존, 숙련인력 이탈 등 인적 구성의 변화가 곧 산업안전의 리스크로 직결되고 있다.
첫째 고령 근로자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기업은 정년연장이나 재고용을 통해 숙련인력을 유지하고자 하지만 고령 근로자는 회복력, 균형감각, 인지속도 등에서 취약하며 동일한 작업이라도 위험도가 높아질 수 있다. 중대재해 발생 사고 통계를 보면 50대와 60대 근로자의 재해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고령자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작업지침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둘째 외국인 및 단기 비숙련 인력에 대한 의존도도 상승하고 있다. 청년층의 생산직, 건설업 기피와 인력 부족 속에서 기업은 외국인 인력을 채용하고 있으나 언어장벽과 문화 차이로 인해 초기 업무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으며 이는 안전사고의 주요 원인이 된다. 실제 중대재해 발생 사고에서 베트남, 중국, 네팔 등 국적의 재해자들도 다수 확인되고 있으며 이들은 통상 업무 투입 초기 단계에 집중되어 사고가 발생하거나, 충분한 교육 없이 고위험 공정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숙련된 안전보건 인력의 이탈이 심화되며, 조직 내 리스크 관리 체계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 산업 전반의 고령화 속에서 내부 전문인력 확보 어려움으로 인해 안전관리의 외부 의존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실질 통제력 약화 우려도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은 시설 중심의 안전관리가 아무리 잘 구축되어 있더라도 변화된 인구구조에 기인한 새로운 리스크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기업은 ‘누가 그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적합한 보호 조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라는 관점에서 인력구조 기반의 리스크 통제 전략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는 종사자의 안전 및 보건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을 고려하여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고 이에 필요한 안전보건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업(장) 특성’에는 해당 사업(장)에서 실제로 작업하는 종사자의 연령, 언어, 숙련도 등 인적 구성의 특성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되며 이러한 요소는 안전보건조치의 내용과 수준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예컨대 고령 근로자의 경우 신체 회복력이나 감각 저하 등으로 인해 사고발생 가능성이 높을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체형에 적합한 보호구 지급, 근력이나 반응속도 등 신체능력을 고려한 작업배치가 필요하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언어 및 문화 차이에 따른 안전 리스크가 크므로, 외국어 안전보건표지를 설치해야 하며(산업안전보건법 제37조) 안전보건교육 역시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통역 지원, 시각 자료 활용 등 구체적 수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재해 예방을 위한 인력, 시설 및 장비의 구비, 교육 역시, 종사자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대응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제 중대재해 대응은 기존의 설비 중심 안전관리 체계에 더하여 변화된 인력구조에 맞춘 전사적 리스크 관리 체계의 재설계가 요구된다.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는 미래지만 그 안에서 사람을 중심에 두는 안전 전략을 갖춘 기업만이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