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현 법무법인(유) 율촌 중대재해센터 변호사
건물관리 업무는 통상 소유주 또는 해당 건물을 사용·수익하는 주체가 건물 전체에 대한 관리를 전문관리업체에 위탁하고 이 관리업체는 다시 미화, 방재, 보안, 설비 등 개별 작업을 협력사에 재위탁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즉 ‘소유주–(신탁사)–건물관리회사–각 작업별 협력사’로 이어지는 이른바 중층적 하도급 구조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경우 어느 주체가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의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부담하는지, 그리고 재해 발생 시에는 그러한 책임의 귀속 주체는 누구인지가 문제될 수 있다.
예컨대 빌딩의 소유주 또는 신탁사가 직접 건물을 사용하거나 자산 운용을 목적으로 부동산 관리회사에 종합관리업무를 위탁하고 그 관리회사가 다시 개별 업무를 용역업체에 재위탁한 구조에서, 미화업체 근로자가 작업 중 사고를 당한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외견상으로는 건물관리 전반을 위탁받아 이를 다시 도급한 부동산 관리회사가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최초 건물의 관리를 위탁한 소유주나 신탁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것일까? 이에 관한 판단은 보다 면밀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을 ‘해당 작업을 실질적으로 위탁한 자’로 해석하며 법령과 선례들에 의하면 이러한 도급인의 지위는 형식적 명칭보다 작업 장소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관리 여부 등 실질에 따라 판단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용노동부는 '도급시 산업재해예방 운영지침' 및 질의회시를 통해 건물관리 사업에서의 도급인 판단 기준을 제시했고 일부 참고할만한 내용이 있어 보인다.
우선 작업 장소에 대한 지배·관리 주체를 한 기준으로 삼을 수 있어 보인다. 명목상 위탁 계약이 체결되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해당 장소에 대한 관리 권한과 위험요소 관리 권한이 특정 주체에게 있는 경우 그 주체는 도급인으로서의 법적 책임을 진다고 해석될 수 있다. 예컨대 건물관리업체가 아닌 건물의 소유주 또는 신탁사가 실질적으로 작업 범위를 설정하고 안전에 관한 사항을 관리한다면 해당 장소는 소유주 또는 신탁사의 지배 하에 있다고 평가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나아가 건물관리 업무와 주체의 사업 내용 간 연관성도 고려할 수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자산 운용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신탁사나 펀드가 부동산을 수익 수단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건물 관리를 외부에 위탁한 경우 해당 관리 업무가 본질적으로 고유 사업 활동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면 최초 위탁자가 도급인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사례들을 살펴보면 백화점 운영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사업주가 해당 건물의 관리를 전문관리업체에 위탁하고 관리업체가 용역업체에 개별 작업을 다시 위탁한 경우 건물의 관리는 백화점 사업 운영에 필수적인 업무로 간주되어 사업주가 도급인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제조업자가 생산설비가 위치한 사업장 시설물을 유지∙관리하기 위해 건물관리업체에 해당 업무를 위탁한 경우에도 시설물 관리는 생산활동과 직접 연결된 업무이므로 사업주가 도급인 지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빌딩을 통해 자산 운용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주가 투자 목적의 빌딩 관리를 위탁했거나 금융업을 영위하는 사업주가 사옥의 일부를 직접 사용하고 나머지를 임대한 경우에도 그 건물관리는 사업 수행을 위한 필수 작업으로 보아 이를 최초 위탁한 주체가 도급인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개인이 단순히 사적으로 보유한 건물의 관리를 건물관리회사에 위탁한 후 관리회사가 개별 업체에 작업을 위탁했다거나 사업의 목적과 무관한 부동산을 전면 임대하면서 그 관리를 관리업체에 위탁한 경우에는 건물관리는 최초 위탁 주체의 사업 수행과는 관련이 없으므로 건물관리회사가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으로 특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결론적으로 중층적 하도급 구조에서는 계약상 명칭이나 도급 단계만으로 도급인 여부를 단정할 수 없으며 건물에 대한 지배·관리 실태와 건물관리업무의 사업적 관련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급 구조가 복잡한 건물관리 현장에서는 실제 운영 주체의 역할, 관리 체계, 사업 목적과의 연관성 등을 점검해야 하며 이를 통해 안전보건관리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작업자의 안전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