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홍 안전신문 사장

47년 전 안전에 첫발을 내디딘 때가 지금도 기억난다. 1977년 8월 8일. 그때도 지금처럼 매우 더웠다.

노동청 여수지방사무소에 한전호남사업소 안전관리자로 선임신고를 마치고 안전인으로 삶을 시작한 지 벌써 반백년이 지나다니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1981년 산업안전중앙전진대회에서 진행된 안전관리 성공사례 발표대회 최우수상 수상 이후 전국에서 진행된 강의, 1984년 해외 선진 산업안전 사례를 배워보겠다고 몇몇 지인들과 일본은 방문했던 경험, 같은 해 덕유산 노사협조 전진대회에서 부총리 등 5000여명의 노사정 대표 앞에서 위험예지훈련 시범을 보였던 감격의 순간, 1987년 한국형 위험예지훈련 기법을 개발해 노동부 산업안전과에 감수를 마쳤던 때의 기분, 1988년 안전보건공단 무재해추진 과장으로 발령받고 일을 시작했던 때의 각오, 1993년 무재해 1000만명 서명운동 성공의 감회, 퇴임 후 한국안전교육강사협회를 출범시키고 후진들을 양성하던 일 등등이 떠오른다.

안전을 처음 시작했던 47년 전과 지금 우리의 안전 환경은 크게 변화됐다. 많은 안전인들이 힘을 합쳐 노력한 성과다. 안전이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던 때, 수많은 근로자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안전이 기업 경영의 중심이 되고 안전 없이는 미래가 없는 시대가 됐다.

산업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안전장비와 기법이 개발되고 정보·기술 전달체계의 혁명으로 누구나 손쉽게 안전을 접할 수 있는 때가 됐다. 그만큼 국민들의 안전의식도 향상됐고 국가도 이에 상응한 안전정책을 추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도 있다. 과거 우리의 사업장 안전의식 고취를 위해 중요하게 사용됐던 도구들이 일부 부작용과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사라져 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무재해운동이다. 정부는 무재해운동이 산재은폐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2018년 공식 인증업무를 종료시켰다. 무재해운동의 중심에 서서 수만명의 전문요원을 양성했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무재해운동이 그동안 우리 산업현장 안전의식을 확산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업장 무재해라는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경영자는 물론 모든 근로자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안전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효과는 매우 컸다. 지금까지 그 어떤 기법과 정책도 무재해운동의 효과에 미치지 못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또 우리 산업현장의 안전 수준이 완성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면 무재해운동은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실천해야 할 범국민 운동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물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패러다임에 따라 무재해운동도 변화돼야 한다.

빅데이터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기를 맞아 더 스마트한 무재해운동이 개발되고 확산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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