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舜)임금은 중국 역사 설화기의 성군이다. 성은 요(姚)이고 다른 이름은 중화(中華)라고 했다.부친은 고수라 했는데 이는 장님이라는 뜻이다. 순의 아버지는 눈이 안보이는 게 아니라 매우 순진무구 우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다고 한다. 순은 일찍 집을 떠나 여러 가지 일에 종사했으나 무슨 일에든지 성실하고 동료들의 모범이 됐기 때문에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순이 역산(歷山:西山省)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지방의 백성은 모두 순의 높은 덕에 감화돼 서로 밭둑을 양보할 지경이 됐으며 또 연못에서 고기잡이를 할 때에는 그 지방 사람들은 낚시터를 서로 사양해 한 사람이 좋은 자리를 독차지하는 일이 없었다고 전해진다.이렇게 순이 살고 있는 곳에는 그의 덕을 사모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1년이 되면 마을을 이루고, 2년이 지나면 읍이 되고, 3년이 지나면 도시가 됐다.  드디어 순에 대한 소문이 임금의 귀에 들어가 당시 요임금이 순을 불러놓고 그의 인간됨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먼저 공주 아황(蛾黃)과 여영(女英)을 순에게 시집보내 이들 부부사이를 관찰했더니 그녀들은 부도(婦道)를 다해 원만한 가정을 이뤘다.이를 본 요임금은 ‘군자의 도란 부부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맞다며 순의 능력을 인정해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요임금에게는 왕자 단주가 있었으나 그를 배제하고 순을 왕위에 올렸다.  순은 20세에 효행으로 유명해졌고, 30세에 등용됐고 50세에 섭정이 됐으며 61세 때 정식으로 제위에 올라 39년 동안 통치했다.순 임금의 치적 중 특히 주목받는 부문이 있으니 바로 농경치수(農耕治水)다.순은 우(禹)라는 인재를 발탁해 일을 맡긴 결과 그는 탁월한 지혜와 뼈를 깎는 노력으로 마침내 그 어려운 치수를 완성했다.사기(史記)에 그의 일화가 기록돼 있다.  “우가 몸을 돌보지 않고 애태우며 중국 천지를 13년 동안 헤매며 이룩한 그 굽힘 없는 치수활동은 그대로 그의 인간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가 자기 집 문앞을 지나갈 때 처자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재빨리 지나쳤으며 마침내는 허벅지의 살이 쭉 빠지고 등은 낙타처럼 굽어 절룩거리며 걸었다. 후에 이런 걸음걸이를 흉내내어 사람들이 우보(禹步)라 했는데 이는 ‘우의 발걸음’을 일컬음이었다.” 순임금은 그 공을 치하해 우에게 상을 내렸으며 만천하에 치수의 성공을 고함으로써 그 후부터는 홍수의 피해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예부터 치수는 농자지대본(農者之大本)의 기본요건이었으며 재해예방의 필수전략이었다. 지금의 우리도 이 치수에 몹시 신경을 쓴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며 많은 인원과 첨단 과학장비와 기술을 동원하는 것도 다름 아닌 치수다.옛 분들은 맨손과 머리만으로 그 어려운 치수에 도전했으나 지금은 첨단과학이 대부분 이를 담당한다. 하지만 묘한 신의 섭리라고 할지 현대에 와서는 기상이변으로 인한 대형 자연재난이 우리를 크게 위협한다. 자연재난에 대처하는 것이 순임금 시대 같지는 않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이에 만전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최근 소방방재청 국립방재연구소에서 빠르고 정확한 자연재난 피해조사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난의 대형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그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은 대개 수작업으로 이뤄졌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객관성이 떨어져 피해물량의 정확성 확보가 어려웠었다.이번에 개발된 피해조사시스템은 지상영상기반 현장조사 시스템, Mobile GIS기반 현장조사 시스템, 항공위성영상기반 피해조사시스템의 3가지로 구성되는데 여기서 산출된 피해정보는 초고속무선인터넷을 통해 홈페이지인 Web-GIS/Web-page로 실시간 전송된다.이 자료는 중앙 및 지자체 재난상황실에서 통계처리하고 재해현황도를 전산표출하는 등 매우 유용하게 활용된다.자연재난을 방지하려는 노력은 중국 요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비록 그 방법은 달랐어도 추구하는 목적은 한 가지였다.사람을 재난으로부터 지키고 목숨을 구하는 것, 바로 ‘안전’인 것이다.myungw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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