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잖은 역사학자들은 우리의 민족성을 놓고 ‘찬연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흰옷을 즐겨 입는 백의(白衣)민족’, ‘남을 해(害)하기 보다는 차라리 외침을 감내하는 한없이 착한 민족’ 운운하면서 순수한 민족성을 강조하곤 한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지 이같은 우리 민족의 정통성에 이상기류가 발생, 그 증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감지되는 대표적인 이상 기류는 대략 이런 것들이다. 그 첫째는 분(憤)을 삭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별 것 아닌 일에도 흥분하고 분을 참지 못해 사지를 부들부들 떠는 모습들이 너무나 자주 목격된다. 안된 얘기 같지만 TV 연속극 등이 이를 더욱 부추기는 듯하다.  둘째는 남들 잘 되는 꼴을 죽어도 못 본다는 심리가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우리의 전통적 민족성 가운데 ‘사돈집 논밭 사는 꼴을 못 본다’는 묘한 심리가 있긴 했으나 얼마 전부터 그 현상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왜 나만 이같은 불행한 상황에 처하게 됐느냐’는 자괴감과 함께 ‘막가파’식 정신파괴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미국 등지에선 경제적 이유가 아닌 사이코적인 ‘문화병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적이 있으나 작금의 우리 현실은 경제적 이유에 근거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은 제반 사회 심리적 변화의 결과 엉뚱한 사건·사고들이 그치지 않고 있다.  예컨대 아파트 밀집지역에선 수십 대의 차량이 타이어 펑크와 유리창 파손 같은 사건이 빚어지고 있는가 하면 지하철역에선 달려오는 열차 쪽으로 줄 서 있던 사람들을 밀쳐버리는 정말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사건까지 벌어지고 있다.  최근 전국을 불안과 공포 속에 빠뜨리고 있는 어린이 실종 사건 등도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와 관련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부분이 방화사건이다.  소방방재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햇동안 전체 화재사고 중 방화 및 방화의심 건수가 1995건으로 4.1%에 달했고 특히 지난해 12월 한달간의 통계에 있어서는 11.1%가 방화 또는 방화의심 사고였다.  우리는 대구지하철 화재사건의 악몽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고의적 방화에 의한 사고였었다.  고시원에 불을 지르는가 하면 노래방, 단란주점, 노인시설, 병의원을 대상으로 한 방화 등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숭례문 화재 역시 방화에 의한 것이었던 게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용의자가 잡혔다고 하니 여죄가 곧 밝혀질 터이지만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제 정신들이 아닌 듯싶다.  이번에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사고 현장엘 갔다. 화두는 “사회혼란이 걱정스러워”였다. 얼마 전에 20여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화재 참사에 대한 기억은 이미 퇴색되기 시작했다. 숭례문 화재사건 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다. 이런 사건·사고들이 이렇듯 반복돼도 과연 괜찮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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