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는 말이 우리의 생활습관 가운데 떡 하니 버티면서 엄청난 해(害)를 끼치고 있다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제거해 내는 게 온당할 줄 믿는다. 안전불감증이란 말이 바로 그것이다.  사전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말임에도 우리의 일상생활에 있어 깊은 뿌리를 내린 채 불행의 단초가 되고 있다. 사고가 터졌다 하면 꼭 붙어다니는 접두사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인재(人災)라는 단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안전불감증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렸을 때도, 성수대교가 한강으로 처박혔을 때도 이 두 단어가 앞뒤에 따라다녔다.  그것이 언제적 이야기인데 오늘날까지 약방감초격으로 사고가 터졌다 하면 이 말들이 붙어다니고 있는 것인가.  요즘 들어 부쩍 사건사고가 잦아졌다. 우리를 더욱 허탈하게 하는 것은 이들 사고의 거의 대부분이 그야말로 엉뚱한 사고들이라는 점이다.   도대체 멀쩡한 열차끼리 추돌하는 사고가 왜 발생하며 건설현장의 크레인들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곳 저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사고를 내 귀중한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가.  안전불감증은 AIDS 보다 질이 더 나쁜 병원체라고 풀이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웬만한 주사나 처방으로는 근치가 쉽지 않은 악성의 병원균이다. 잠시 한눈을 팔면 그 틈새를 여지없이 파고드는 균체가 바로 안전불감증 병원체이다.  안전선진국이라는 미국의 미시시피강 다리가 우리의 성수대교처럼 참담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나 지진에 관한한 세계 제일이라던 일본에서 방사능 누출 사건이 발생한 것 등은 모두 잠시 잠깐의 방심에서 비롯된 사건들이다.  방심과 자만심 따위는 안전불감증이란 병원체가 호시탐탐 노리는 좋은 먹이감이 될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안전불감증은 우리에게 치명적 불행을 안겨주는 사고의 단초이며 이로인한 결과는 얼마든지 충격적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안전불감증은 우리로서는 ‘공공의 적’일 수밖에 없다.  정책을 만드는 당국으로서는 당국의 입장에서 ‘안전불감증 박멸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고 이를 집행하는 행정기관은 행정기관으로서, 일선 현장의 근로자는 근로자의 입장에서 각자 나름대로 안전불감증 퇴치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결국 안전불감증 척결은 특정 개인이나 기관만의 의무사항이 아니다. 국민 모두의 책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를 포함한 내 가족, 내 가정의 행복지키기와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안전불감증과 관련해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이 있다. 안전불감증의 주체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인재(人災)라는 말이 붙어 다니는 것이다.  화재와 관련, 한때 ‘자나 깨나 불조심’이란 표어가 강조되던 때가 있었다.  모르긴 해도 지금이야말로 ‘자나 깨나 안전불감증’이란 캐치프레이즈가 절실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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