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사)시스템동바리비계협회 이사장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1976년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즐겨 인용한 말이다. 경제학 서적에서 볼 때보다 치열한 산업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곱씹어보다 이 말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다.

공짜 점심은 미국 서부시대 어느 술집 주인의 상술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는 일정량의 술을 마시면 점심을 공짜로 제공했는데 ‘공짜’라는 말에 솔깃해진 많은 이들이 주인이 설정한 기준을 넘기는 양의 술을 마셨다. 결과는 독자들이 짐작하는 대로다. 손님들은 점심값이 두둑하게 포함된 비싼 술값을 계산해야 했다.

어떤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기회비용'이라고 표현하고 나는 ‘제값’이라고 표현한다. 제값은 국어사전에 ‘물건의 가치에 맞는 가격’이라고 나와 있다.

경제활동을 할 때는 제값을 치러야 한다. 제값을 치르고 만든 물건이라야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다. 2010년 중반에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저품질의 중국 조선소에 주문이 폭주했었다. 한국 조선업체들이 경쟁에서 한창 밀리던 2018년에 중국 후둥중화가 건조한 LNG선 글래드스톤호가 호주 해상에서 엔진 고장으로 멈춰서는 해양사고가 발생했다.

막대한 해상견인비와 지연배상금, 선박수리비 등이 선주에게 청구되었다. 게다가 이 배는 시운전 2년 만에 폐선까지 되고 말았다. 아직 고객들에게 잃어버린 신뢰의 가치는 피해액에 넣지도 않았다.

이후 한국 조선업체들은 기술과 신용을 무기 삼아 맹렬한 기세로 세계 1위 자리를 기어이 되찾아왔다. 글로벌 조선·해운 조사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사고 직후였던 2020년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선은 총 63척이었는데 이 중 국내 조선 3사가 73%의 물량을 쓸어담았다. 사고 직전 수주경쟁을 휩쓸던 중국 업체는 10%에도 못 미치는 5척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산업안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제값을 치르지 않고 안전관리비용을 줄여 이윤을 남기면 누군가는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공짜는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현재 시스템동바리와 시스템비계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정부지정 전문교육기관은 전무하다. 당연히 정부에서 인증한 전문 교재도, 매뉴얼도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안전에 관해서 공짜 점심을 바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구식 강관비계공정을 교육하는 교육기관이 있는데 굳이 돈과 노력을 들여서 새로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는 심보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비계공정과 강관비계공정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문성의 영역에서 보면 전혀 다른 기술이라는 점이다. 자동차 운전면허가 있어도 건설기계를 운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바퀴 달렸다고 모든 기계를 똑같은 기술로 운전할 수 없는 것처럼, 파이프처럼 생겼다고 똑같은 기술로 조립하고 해체할 수 없다.

일군건설업체중에서도 선두권에 속하는 업체들이 시공과정에서 철근을 누락하고, 동바리를 제대로 설치·해체하지 않았다가 대형 사고를 낸 일로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치킨요리로 유명한 한국에 ‘순살 치킨’을 위협할 새로운 명물 ‘순살 건물’이 생겼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고도 나는 웃지 못했다. 한동안 해외에서 수주경쟁을 하는 한국 건설업체들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전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대가를 지불해야 안전하고, 지불하지 않으면 사고가 발생해서 더 큰 액수의 손해배상청구서를 받게 된다. 경제학에 공짜 점심이 없듯이 공사판에도 공짜 안전 따위는 없다.

지금 당장은 공짜로 점심을 먹은거 같지만 나중에 바가지 요금이 청구되기 때문이다. 특정 업자가 제값을 치르지 않고 잇속을 챙기면 나중에 청구되는 값비싼 바가지 요금은 온 국민이 나눠서 내야 한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한동안 한국업체들은 해외건설수주전에서 전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국민들은 건설안전에 대한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함께 느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 불쾌한 감정을 다시 느낄 일 없는 20세기의 유물이라 믿었다. 그런데 21세기가 시작된 지 한참 지난 지금 그때의 데자뷰를 느끼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제때에 제값을 지불하고 안전에 신경쓰는 게 제일 싸게 먹힌다는 이치를 우리는 도대체 언제쯤 상식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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