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걸 시스템동바리비계협회 이사

힙합씬(힙합계)에 영단어가 난무하는 것처럼 공사판에서는 일본어의 잔재가 아직도 많이 쓰인다. 그간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 많이 순화되고 있기는 하다. 현장에서 ‘오야지’는 ‘반장’, ‘시마이’는 ‘작업종료’, ‘야리끼리’는 ‘작업종료시 바로 퇴근’ 정도로 바꿔 부르는 일이 흔해졌다. 공사판에도 광복의 날이 머지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국어 순화작업을 거듭하고 있는 일본식 현장용어 중에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단어는 아마 ‘일용직 노동, 막노동’ 등을 일컫는 노가다일 것이다. ‘노동할 노’자로 시작되는 국어 한자어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 봤다.

현장에서 하도 끈질기게 쓰이니까 어원이 궁금해서 조사해 본 적이 있다. 토방(土方)을 뜻하는 일본어 ‘토카다’가 변형되었다는 설명이 정설로 통한다. 토목공사 노동자들이 작은 토방에서 숙식을 해결해가며 하던 험한 일을 통칭해서 토카다로 부른 모양이다.

말끔하게 갖춰입고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 아니니까 영어 No(없다)와 일본어 가다(틀, 형식)가 합쳐져서 ‘멋진 틀(모양새)이 안 나오는 험한 일’ 또는 ‘정해진 형식 없이 아무 일이나 주어지는 대로 다 하는 노동’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의견을 가진 이들도 많다.

오랫동안 가설공정 관련 인명사고, 붕괴사고를 끝도 없이 접하면서 노가다의 어원과 관련된 개인 가설을 하나 갖게 되었다. ‘노가다’라는 말이 영어의 부정어 노(No)와 보호를 뜻하는 가드(Guard)가 합쳐져서 ‘보호장비 없이 하는 위험한 일’을 뜻하는 콩글리쉬(한국식 영어) ‘노 가드’에서 파생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황금을 뜻하는 노다지의 어원이 노(No)와 터치(Touch)가 합쳐진 노터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세간의 통설 어딘가와 맥이 닿아 있는 발상일 것이다. 노가다의 어원을 일본어가 아닌 영어에서 찾는 신선한 발상이라고 내심 흐믓해하다가, 이내 도대체 얼마나 안전장치 없이 인명사고를 당하는 경우를 많이 접했으면 이런 생각을 다했을까 싶어 씁쓸했었다.

제대로 교육받은 후에 안전장비를 갖추고 현장에 투입되어, 우수한 표준 매뉴얼대로 작업하면 인명사고는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문제는 이 간단하고 당연한 조치가 현장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건축공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했다가 해체하는 가설공정은 현장에서 대표적인 위험공정으로 분류된다. 실제 대부분의 건설사고 통계에서 가설공정은 사고발생율 중에서 40~60%의 지분을 거뜬히 차지한다.

이런 위험한 공정을 보다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시스템공법이 오래전에 개발되어 보급되고 있지만 전문교육기관이 단 한곳도 없다. 구형 강관공법 관련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는 낡은 법조항이 개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로부터 지정받은 전문교육기관에서 양성한 시스템공정 전문인력이 현장에 공급되지 않으니 시스템공법 보급도 더디기만 하다. 지정교육기관이 없는데 공신력 있는 표준 매뉴얼이 현장에서 자리잡았을 리 만무하다.

위에서 제대로 교육받고, 장비 갖추고, 매뉴얼대로 시공하면 사고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상식적인 말을 했었다. 지정교육도 없고, 안전고리 걸기도 쉽고 안전난간을 설치하기도 간편한 신기술은 보급이 더디고 공식 매뉴얼이 없는 걸 당연시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가설공정의 재해발생율을 낮출 수 있단 말인가. 교육, 장비, 매뉴얼 같은 핵심적인 안전장치 없이 현장에 투입되는 작업자들이 하는 업무를 ‘노 가드(No guard)’가 아니라면 달리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권한을 가진 관계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시스템공정 관련 법률 1줄만 시대 상황에 맞게 고쳐주면 해결될 일이다. 법적 근거를 가져야 전문교육기관을 만들어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고 이들이 현장에 넉넉하게 공급되어야 시스템공정이 활성화되면서 건설판이 안전해지는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다들 심드렁하게 강 건너 불구경하는 가운데 오늘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믿을만한 가드(안전장치) 없는 노가드(No guard)를 하기 위해 고소 작업장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도대체 누가 노가다판을 노가드판으로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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