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사)시스템동바리비계협회 이사장

병법에 선수필승이라는 개념이 있다.

먼저 손을 쓰는 쪽이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학창시절 주먹깨나 쓴다는 친구들의 단골전술 역시 소위 말하는 ‘선빵 날리기’였다.  

사회에 나와 대형 공사를 책임지는 현장소장으로 근무할 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이 전술은 단순히 싸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성패를 가르는 모든 순간에 적용됨을 알게 됐다. 

현장 인력 중에 뛰어난 기술을 가진 베테랑은 즐비했지만 어떤 일을 미리 처리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가뭄에 콩 나듯 일을 선제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을 만나 긴 호흡에서 그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크게 성장해 있곤 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선수필승의 전술은 날이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남이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시도하기’나 ‘문제가 터지기 전에 미리 대비하기’의 중요성을 체득한 이후로 이 전술은 나의 일처리 기본 옵션이 됐다. 

지난달 13일부터 15일까지 킨텍스에서 열린 ‘2023 한국건설안전박람회’에 협력사들과 함께 선행안전난간대를 출품할 때의 마음가짐도 마찬가지였다.

선행안전난간대는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건설현장 추락사고를 사전에 막기 위해 개발한 기술을 민간기업에 무상이전함으로써 상용화된 제품이다. 아래에서부터 조립해 올라가는 비계 구조물은 조립 순서상 발판이 먼저 설치된 후에 안전난간이 올라가기 때문에 상층부 작업자들은 추락재해로부터 보호받을 방법이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키 위해 비계작업과 관련된 모든 순간 안전난간이 있는 상태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드는 신기술이 안전난간 선행공법이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미리 대비하는 선수필승의 정신이 담긴 기술이어서 내가 먼저 나서 보급해야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선행안전난간대는 안전을 보완하는 부자재이기에 기존의 구조검토와 상충되지도 않고 정부에서도 특허기술을 개발해 민간 중소기업에 무상이전할 정도로 활발한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게다가 비용 역시 산업안전보건관리비로 집행할 수 있으니 건설현장에 빠르게 보급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관계자들의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혁신적 신기술이 좀처럼 널리 활용되지 않는다. 일정한 규격으로 만들어진 선행안전난간대는 작업자의 감에 의존해 시공되는 강관비계에는 설치할 수 없고 정해진 규격의 자재를 시스템에 따라 조립하는 시스템비계에만 적용 가능하다.

문제는 현재 시스템비계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교육기관이 없기 때문에 작업자들에게 기술을 체계적으로 전수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주먹구구식으로 교육해야 하는데 가르치는 선임자도 제대로 배운 적 없기는 매한가지다.

혹자는 왜 시스템공법 관련 전문교육기관이 없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관련 법규가 없기 때문이다.  

산업현장에서 일하며 그 가치를 통감하는 경영철학 중 하나가 ‘위대한 리더는 살짝 앞서 걸으며 시대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지금 시스템공법 관련 법규는 앞서가기는 커녕 시대보다 수십년 뒤떨어진 채 기술 발전과 건설안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시대보다 앞서지는 못하더라도 나란히 걸을 수는 있도록 시스템공법 관련 법체계를 손질하려는 국민의 리더가 나타나 시대와 조화를 이루는 법제화의 실마리를 찾아내길 기대해 본다. 

싸움판도 건설판도 선수필승(선빵)이 기본이다. 출수가 늦으면 쓰러진 채 몰매를 맞을 뿐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건설현장 안전사고를 당할 셈인가.

저작권자 © 안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