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장

오래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 계단을 비롯해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곳에 ‘소심(小心)’이란 글씨가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사고 예방을 위한 문구임을 이내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같은 한자권 문화임에도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어 그 의미를 되새겨 본 기억이 있다.

‘소심’. 문자 그대로 사고 위험이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위험 행동을 최소화시키거나 소극적 움직임을 유도키 위한 표현으로 생각해 봤다.

비슷한 경우 우리나라는 주로 ‘주의(注意)’ 또는 ‘조심(操心)’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국어사전을 살펴보니 ‘주의’는 정신을 한데 모아서 대하는 것, ‘조심’은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신경쓰는 것을 뜻한다. 이는 소심보다 적극적 의미로 어떤 행위 자체를 자제시키기 보다 좀더 집중해서 사고 가능성을 줄일 것을 당부하는 의미가 있다 하겠다.

안전선진국인 영국과 미국은 ‘Watch’라는 동사를 애용한다(Watch out 등). Watch라는 동사는 단순히 사물을 보거나(See), 지켜보는(Look) 정도를 넘어 적극적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적절한 행동까지 요구하는 태도를 내포한다.

결과적으로 위험요인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접근·대처하는 안전문화가 존재하느냐에 따라 안전수준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 안전문화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자동차 안전벨트 착용 습관이 어떻게 정착됐는지 생각해 보자. 경찰이 집중단속을 실시하기도 했지만 국민 습관이 바뀐 것은 안전의식 향상 때문이다. 장기간 캠페인을 전개하고 다양한 사고사례를 꾸준히 접하면서 안전벨트 착용의 중요성을 국민 개개인이 인지하고서야 실천하게 됐다.

사업장 안전문화도 다르지 않다. 지속적이며 꾸준한 계도를 통해 전 임직원의 안전의식 향상과 참여도를 높여야 한다. 선진국이 그러하듯 사업장 중대재해 예방은 모든 구성원이 안전수칙 준수와 위험요인 발굴·개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 안전관리가 안전부서만의 업무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켜줘야 한다. 이것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시그널이고 이러한 시그널이 올바르게 작동할 때 현장 안전의식과 문화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프로야구 경기를 보면 과거 타자들은 보호장비로 헬멧만 썼다. 지금은 팔꿈치, 손가락·손등, 발등 및 종아리 보호대 등을 자발적으로 착용한다. 부상당하기 전에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는데 집중한다. 이렇듯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충실하면서 안전 확보에 적극 참여하는 태도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메시지가 산업현장에 제공돼야 할 올바른 시그널이다.

일각에서는 중대법 적용을 통한 사업주 책임과 사업주 처벌 강화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그러나 다양한 원인이 중대재해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사업주 처벌 강화만 고집하는 것은 단선적이며 산재예방에 비효과적이라 본다. 법·제도 개선 및 규제 강화와 같은 외부적 압력도 중요하지만 사업장 내부의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 안전관리전담조직, 노동조합, 근로자 등 다양한 주체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각 이해관계자의 소통과 협력을 통한 안전문화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안전문화 확산을 고민할 때에도 조급함을 경계해야 한다. 성급하게 이뤄진 산안법 전부개정과 중대법 제정이 유발한 혼란을 우리는 몸소 경험하고 있다. 사업장에서도 조급함에서 비롯된 절차와 기준 무시, 무리한 작업이 사고를 초래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사업장 안전 개선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되 차분하고 냉정히 접근하는 안전문화를 다같이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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