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선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 회장 / 가톨릭대학교 교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에도 사고는 지속되고 있고 정부에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중대재해를 막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중대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동안 중대재해를 예방키 위한 흐름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중대법 제정시 경영계의 반대는 대단했다. 재해가 발생하면 모든 사업주가 구속돼 회사 운영 자체를 할 수 없는 기업살인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고용노동부 발표에 의하면 2022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사고사망은 1075건 발생했다. 이 중 중대법 적용 대상은 278건으로 25.8%에 불과하고 기소된 것도 21건에 머물렀다(기소율 7.5%). 사건 접수에서 기소까지 걸리는 시간은 무려 9개월이나  돼 중대법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게 한다.

중대법 판결이 내려진 것도 3건에 불과하다. 이 중 2건은 집행유예로 풀려나 중대법을 기업살인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22년 최초로 3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켜 중대법 제1호 적용대상이었던 삼표산업 판결도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울산 S-Oil 온산공장에서 폭발사고로 사망자 1명을 포함해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검찰은 중대법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지난 8월 서울 송파구에서 LG전자 자회사 소속 에어컨 수리기사가 실외기를 점검하다 추락해 사망했지만 대표이사는 무혐의 처분됐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기업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많은 기업들이 로펌에 컨설팅을 의뢰하는데 큰 비용을 지출한다. 그 예산을 안전보건관리에 사용한다면 산재 감소에 더 효과가 있을 것 같지만 기업주의 생각은 예방보다 처벌을 피하는 것을 더 중시한다. 고용노동부가 안전보건자문단을 법률가 중심으로 운영하고 법 개정을 통한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고 발표한데 대해 기업주 입장에서는 법만 잘 피하면 된다는 시그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중대재해감축 로드맵 발표 후 각종 TF를 운영하고 있다. TF 참여 전문가들이 좋은 의견을 제시하겠지만 로드맵 발표 10개월이 다 돼도 TF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현장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각 지역별로 안전문화실천추진단이 운영되고 있다. 지역 중심 풀뿌리 안전문화 확산을 담당한다고 하지만 일부 단체만 참여해 관 주도로 진행되는 추진단이 전국에 안전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정부가 주체이고 민간이 객체인 수많은 활동들이 있었지만 담당 공무원이나 공단 직원의 인사이동으로 바뀌게 되면 형태도 없이 흩어져 버리는 것을 수없이 경험해 왔던 터다.

정부에서는 지속적인 사고 발생으로 안전리더회의, 현장점검 등을 통해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또한 지나가는 의례적인 행사라 생각할 것이다. 진정으로 중대재해를 줄이고자 한다면 엄격하게 법을 집행할 것이라는 정확한 시그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고용노동부에서 엄격한 법 집행을 하기 어렵다면 고용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줘야 한다.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수많은 안전보건 전문단체와 전문인력을 산재예방 핵심인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들이 열정적으로 사업주, 근로자를 설득해서 안전보건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확산해 나간다면 전국에 안전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주도로 모든 것을 추진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관련분야 인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담당자가 바뀌어도 산재예방사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시그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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