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섭 (사)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국립군산대학교 명예교수

노동안전에서 가장 취약한 산업이 건설업이다. 취업자수에서는 전산업의 7%에 불과한데 사고사망자수는 줄곧 절반을 차지했고 사고사망만인율은 일반산업의 13배에 달한다.

최근 건설업의 안전문화 중 최악의 문화는 안전참모에게 사고의 책임을 물어 안전 전담부서가 점점 더 기피 부서가 돼가고 있다. 건전한 안전문화는 역할과 책임에 대한 공정하고 명확한 분담을 전제로 한다. 선진국에서는 건설업에 대한 공장법의 한계를 인지하고 오래 전에 발주자를 보좌하는 코디네이터 제도를 도입해 건설사업에 적합한 안전조직을 구축했지만 국내 제도는 제정 당시 모방했던 일본 노동안전위생법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당시 안전참모를 라인 소속자의 명칭인 안전관리자로 규정한 것부터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다. 10년 후에야 잘못을 인지하고 전부개정을 통해 지도, 조언, 보좌 및 건의하는 참모역할로 바로잡았지만 역할 조정에 그쳐 명칭과 위상까지 바로잡지는 못했다. 건설업의 경우는 건설사업 사업주가 발주자임에도 발주자의 참모가 아닌 수급인의 참모 역할로 존치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에도 안전과 생산의 괴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와 정책이 흘러왔으며 잘못된 개념은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이어지고 있다. 참모인 안전담당임원을 경영책임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중대재해처벌법 1호 선고(2023. 4. 6.)에서도 안전관리자가 벌금 500만원의 선고를 받았다. 산안법 제정 초기의 오류가 중대법에 그대로 전이돼 생산조직 속의 안전전문가들이 업무를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

안전조치는 작업 안에서 이행돼야 햐며 작업과 별개로 이행돼서는 안된다. ‘생산안전 일체의 원칙(built-in safety)’을 무시해 라인과 참모의 역할과 책임을 혼돈한 대가는 치명적이지만 그 심각성은 제대로 인지되지 못하고 있다. 안전조치 의무자를 안전참모로 착각하다 보니 안전역량과 수준이 개선돼야 할 라인조직은 역량 향상이 이뤄지지 않아 안전수준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제도다. 시행된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건설사는 계획서를 자체 작성하지 못해 외주작성이 만연하고 있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안전부서에 돌리다 보니 라인조직의 자발적 노력을 유도하지 못해 결국 생산조직의 안전수준은 제자리걸음만 하게 만든다. 더 우려스러운 현상은 건설업에 부적합한 안전관리자를 선임만 확대하면 안전수준이 향상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고상한 안전문화를 논하기 전에 책임체제부터 올바른지 살펴야 한다. 건설사고 방지 노력의 실효성이 부족한 근본적 원인은 라인과 참모 사이의 역할과 책임의 혼돈에 기인함에도 이를 고치려는 노력은 어디에도 없다. 안전의 이상향은 자율안전으로 외부의 개입 없이도 생산조직이 안전한 상태를 달성하는 것이다. 안전전문가와 안전전담부서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참모 역할에 그친다. 

원칙이 전략에 우선한다. 근본부터 바로잡아야 안전문화도 진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경영과 안전의 첫번째 원칙은 누구의 책임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 첫 과제는 라인과 안전참모의 역할, 책임, 명칭부터 바로잡는 것이다. 건설업 안전관리자 제도는 선진국형 안전조정자로 일원화돼야 한다. 제도가 제대로 구현된다면 인명을 보호하는 안전전문가의 역할은 안전의 가치처럼 최고의 가치를 가지므로 모두가 선호하는 직업이 될 것이고 안전문화 진흥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미래를 알려거든 지나온 길부터 돌아보라 했다(慾知未來 先察已然). 진정한 안전문화 진흥은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기 전에 이전의 과실부터 바로잡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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