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석 안전보건공단 경기동부지사장

급할수록 돌아가라

하씨는 냉동기만 10년 이상 다뤄온 냉동기 설치 전문가다.
본격적인 무더위에 대비키 위해 7월부터는 냉동기 설치와 수리 요청이 쇄도하는 시기다. 이날도 하씨는 어느 대형마트에 설치된 냉동기 A/S 요청에 급하게 달려갔다.
이른 무더위에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대형마트 측은 신속하게 냉동기를 수리해 줄 것을 요청했고 하씨는 다음날 영업 전까지 수리를 끝내야만 했다.
하씨는 이날 밤 12시부터 마트 기계실에서 협력업체 직원 3명과 냉동기 수리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냉동기 내부의 냉매(냉동기 내부에서 순환을 통해 열을 흡수하고 온도를 낮추는 물질)를 회수해야 했다.
당시 냉동기 내부에 남아있는 냉매는 총 300kg이었고 이 냉매를 전량 회수하기까지는 꼬박 이틀의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영업 전까지 냉동기 수리를 끝마치기 위해 냉매 회수(질소 가압법)에 주어진 시간은 고작 2시간이었다.
하씨는 어쩔 수 없이 설비 내에 냉매 10%(기체화된 냉매)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설비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괜찮지 않았다

하씨는 서둘러 냉동기 해체를 시작했고 냉동기 내부에 남아있던 냉매가 작업 장소에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씨를 비롯한 나머지 작업자들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국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협력업체 직원들은 한명씩 쓰러지기 시작했고 하씨 본인도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이내 4명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냉매가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협력업체 직원은 물론 냉동기 설치 전문가인 하씨 조차도 이러한 ‘남아있는 냉매’가 자신들의 생명을 앗아갈 만큼 위험한 물질임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경력이 안전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하씨는 오랫동안 냉매를 취급해 온 기술자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안전을 확신한 하씨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하씨만 믿고 안전작업을 확인하지 않은 마트의 잘못 이었을까?
하씨는 냉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물질이었기에 ‘설마의 가능성’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냉매를 전량 회수하기 위해서는 이틀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기간 동안 충분히 냉매를 회수해야 했으나 시간적 압박에 시달린 하씨는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
기본적인 작업기준(사용 중 냉매 전량 회수 후 작업)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또 비록 냉매 전량을 회수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충분한 급기(환기)만이라도 이뤄졌더라면 하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최소한 사망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노하우(no-how)? 노하우(know-how)?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전문가라 확신한 하씨조차도 냉매의 위험성을 알지 못해 한순간에 소중한 생명을 잃고 말았다. 
냉매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이러한 냉매누출에 따른 중독사고를 예방키 위해서 도급인은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첫째 도급인은 냉매를 전량 회수할 수 있도록 ‘안전한 작업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안전한 작업절차에는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비키 위해 작업 중 환기(급기) 조치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둘째 도급인은 안전한 작업절차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수급업체 평가(재해예방 조치능력 및 평가기준)를 진행한 후 선정해야 한다. 
수급인들은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질식(중독) 예방을 위해 환기 등 필요한 안전조치를 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셋째 냉동기 교체, 점검·수리, 냉매 재생작업, 냉매 교체, 보충작업 전에는 반드시 위험성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자. 최소한의 작업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지키도록 하자.
냉매 취급작업이 빈번한 하절기에 이와 같은 냉매 누출방지와 사고에 대비키 위해서는 최소한 작업 중 반드시 ‘환기(급기)’만이라도 철저히 시키도록 하자. 그것이 작업자의 소중한 목숨을 살리는 것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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