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자 6일은 현충일이다. 호국보훈의 달 우리가 할 일은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고 지난 일을 거울삼아 미래로 가는 길을 밝히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최대 비극인 6·25전쟁은 3년 만에 휴전으로 총성이 멎었으나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6·25전쟁은 북한 김일성이 소련의 지원 아래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공산군에게 ‘폭풍 224’ 명령을 발동, 38선 접경 11개 전역에서 선전포고도 없이 불법 남침해 일어났다. 유엔군이 우리를 도와 참전하고 중공군(인민지원군)이 북한을 지원하면서 국제전 양상으로 격화, 3년1개월 동안 이어졌다. 6·25전쟁은 소련의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야욕을 역이용해 극동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소냉전의 승기를 잡으려는 의도 아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한 것임이 밝혀졌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 무방비 상태에서 북한 공산군이 소련군 탱크를 앞세워 6·25전쟁을 일으키자 이승만 대통령은 탁월한 외교력으로 6월 27일 미군의 참전과 6월 29일 유엔군의 파병을 이끌어냈다. 미 육군 선발부대가 7월 1일 부산에 도착하고 7월 5일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유엔군이 조직돼 16개국 군대가 들어와 우리를 도왔다.

부산 인근까지 밀린 상황에서 유엔군과 국군은 맥아더의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해 10월 1일 38선을 돌파, 10월 10일 평양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이르렀으나 11월 중순 중공군이 개입해 전세가 다시 뒤집히고 1‧4후퇴로 이어지면서 남으로 내려오는 수많은 피란민 행렬과 1000만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군과 유엔군 장병들이 순국했고 한반도는 초토화됐다. 우리는 호국영령들의 뜨거운 애국애족 정신을 바탕으로 공산세력과 맞서면서 분단국가로서 세계 10위권으로 진입했음을 잊지 말고 국가 발전에 더욱 열정을 쏟아야 한다.    

호국보훈의 달 6월, 동족상잔의 전흔(戰痕)을 되돌아보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 대동단결 의지를 더욱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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