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효 (사)한국시인협회장

얼마전 프랑스에 다녀왔다. 37년 전 필자가 KBS 파리 특파원으로 첫발을 내딛었을 때는 도로에 가득한 개의 배설물이 우리 가족을 맞았었다. 예술의 도시 파리의 첫인상이 개 배설물이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대단한 애견가인 파리장들이 왜 개X을 스스로 처리하지 않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우리가 내는 세금이 얼마인데 개X 정도는 시에서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참으로 이기적인 사람들이란 생각을 하면서 자칫 밟지 않으려 발밑을 조심하며 3년을 보냈다. 하기야 분뇨를 길거리에 마구 버리던 시절, 오물에 발을 더럽히지 않으려 하이힐을 고안했고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도 나오는 파리의 하수도는 관광지로도 유명하니 이 도시와 배설물의 인연은 깊다고나 할까.

이번에 다시 찾은 파리는 그 정도는 약과였다. 온 도시에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해 청소부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지도 않았는데 도심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치우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다니 이해하기 힘들었다.

프랑스인들은 연금을 기다리며 산다는 말이 있다. 즉 62세가 되면 연금수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직장을 그만 두고 세계 일주에 나서는 것이 많은 프랑스인들의 꿈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은퇴자가 늘어나자 연금 재정 기반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이 일반 근로자의 연금수령 시점을 현재 62세에서 점진적으로 64세로 연장하고 대신 수령액을 약 18% 인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연금 개혁을 추진하자 프랑스 전역에서 8개 노동단체가 연대 총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그 와중에 한국의 시인들이 프랑스에 도착했다. 한국시인협회는 세계 시의 날인 지난 3월 21일 파리의 주불문화원에서 프랑스시인협회와 상호 교류협력 협정에 서명하고 시 낭송과 공연 등 축제를 펼쳤다.

프랑스 시인 50여명과 한국에서 간 시인 20여명, 그리고 최재철 주불 대사와 박상미 주 유네스코 대사 등 100여명의 참가자들은 밤이 깊도록 식사를 함께 하며 우정을 나눴다.

파리 시테 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시와의 만남’ 행사에서는 한국어과 학생들이 한국어로 쓴 자작시를 낭송하고 해설을 했다. 액스 마르세이유 대학교에서는 한국 시 강연과 시인들의 시 낭송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대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 가운데는 “내 생애에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며 눈물짓는 사람도 있었고 한국 시인들의 사인을 받으려는 프랑스 학생들이 줄을 이었다.

액스 마르세이유 대학교의 한국어과 입학 경쟁률은 수십대 일로서 중국어과와 일본어과를 앞지르고 있었다. 학생들은 한국을 좋아하며 한국에 가고 싶어하고 심지어는 한국인과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한국어과 교수들은 이런 한국 열풍을 반기면서도 학생들의 장래를 오히려 염려하고 있었다. 필자가 프랑스에 첫발을 내딛었던 37년 전에는 한국을 잘 몰랐었는데 짧은 기간 동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그 원인은 한국의 급격한 국력 신장과 K팝, K드라마, 영화 같은 한류의 덕분이다.

그런데 한국의 실상을 보면 과연 이들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킬 수 있을지 염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한국 내부의 극렬한 분열상을 잘 모르는 이들이 동경만으로 한국을 찾았을 때 갖게 될 실망이 두렵다. OECD 정상급인 자살률, 특히 늘어만 가는 청소년 자살률은 가리고 싶은 아픔이다. 

또 한국이 과연 안전한 사회인가라는 질문에 이르면 부끄러움이 앞선다. 크고 작은 안전사고들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는 사고들, 특히 159명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지난해 10월 29일의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면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원시적 사고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안전신문이 이룬 지난 34년의 성과는 실로 엄청나다. 각종 안전사고의 취재·보도는 물론 안전의 실태 보도와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기획 취재 등은 안전한 우리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귀한 노력의 결실들이다. 또 안전에 대한 보다 큰 정책적 관심을 정부에 촉구해 옴으로써 언론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AI 시대로 급진전해가고 있다. 인간의 삶을 돕기 위한 AI의 출현은 신형 안전사고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린다.

인류는 산업의 고도화 속도만큼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왔다. 이제는 AI 시대라는 처음 맞는 시대의 신종 사고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AI 시대가 인류에게 새로운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신문 창간 35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현재의 주간 체제가 일간으로 격상되기를 기대한다.

거기에는 많은 도전이 따르겠지만 안전이 갈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거쳐온 난관 극복과 도전 정신이라면 능히 해내리라고 믿는다.

안전신문의 창간 34주년을 축하하며 새로운 도약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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