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진 안전보건공단 서울광역본부 안전문화팀장

체르노빌 원전폭발은 1986년 발생했다. 30여명이 폭발 몇주 내에 사망했고 그때 발생한 방사성 물질로 6500명의 암환자가 발생했다.

당연히 이 사고의 발생 원인을 밝히려는 다양한 노력이 이뤄진 결과 국제원자력안전자문그룹 보고서에는 원자력 발전소의 설계, 설비 제작, 발전소 건설, 실제 운영 등 전 과정에서 나타난 안전문화 부재가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됐고 1992년 발표된 2차 보고서에서는 안전문화라는 용어가 35번 등장한다.

지난 2월 6일 튀르키예에서는 규모 7.8의 유례없는 대지진으로 현재 확인된 사망자만 5만1000명이 넘고 수많은 건물이 붕괴돼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런데 지난 11일 비즈니스터키투데이 현지 언론은 이번 지진 속 단 한명의 사상자가 발생치 않은 것은 물론 건물 조차 무너지지 않은 에르진(Erzin)시에 대해 집중 보도해 화제를 모았다. 인구 4만2000명의 에르진은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10개주 중에서 가장 손해가 극심했던 하타이주에 속한 도시로 왹케시 엘마스올루 시장의 건물 건축시 안전에 대한 신념탓에 주민들의 목숨과 보금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튀르키예 정부는 앞서 1999년 이르미트 강진 이후에도 부실공사가 만연하던 실태가 공공연하게 드러나 비판을 받는 와중에 지진의 여파로 부실 시공으로 인해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건설업자 100여명을 체포하고 내진 설계와 시공 법규를 지키지 않은 건축자들을 형사 처벌한 것으로 알려졌다.

튀르키예는 지질학적 특성상 지진이 다발하는 지역이고 현대에 와서는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대략 20여년 주기로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일찍부터 지진 위험지역에 포함된 튀르키예임에도 어떻게 건물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으로 지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국가적인 법이 시행된 최초의 나라가 바로 튀르키예라 한다. 1999년 이즈미트 대지진 이후 튀르키예는 지진지역 건물의 내진 능력과 건축 규제를 강화하는 건축법까지 제정한 바 있으나 안전을 등한시하는 풍토가 만연해 그러한 법규가 현실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광주 학동 철거현장 붕괴(9명 사망, 8명 부상), 광주 화정동 아파트 외벽 붕괴(6명 사망, 1명 부상) 같은 사고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줬다. 우리나라는 2019년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이면서 인구 5000만명 이상인 ‘30-50클럽’에 세계 7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우리나라 2022년 사고사망자는 847명, 만인율 0.43‱으로 OECD 38개국 중 34위, 영국의 1970년대, 독일·일본의 199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최근 산안법 전면개정(2020년 1월), 중대법 시행(2022년 1월) 등 처벌을 강화했음에도 8년째 사고사망만인율이 0.4~0.5‱대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으며 떨어짐(36.8%), 부딪힘(10.5%), 끼임(10.3%) 등 사고가 전체의 60% 수준 내외로 고착화되는 등 기본 안전수칙 미준수로 인한 사고가 여전히 전체의 절반 이상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모든 주체의 참여가 중요하나 안전보건관리자 등 일부 특정인만이 산업안전보건 책임이 있다고 인식하는가 하면 안전을 비용으로만 접근, 생산에 부가적 요소로 치부하는 관행이 여전하고 안전은 근로자에게 ‘권리’이자 ‘의무’임에도 그동안 사업주 책임에 부가된 근로자의 ‘권리’ 중심으로 강조돼 온 것도 사실이다.

‘생산’ 우선 관행과 ‘빨리빨리’ 문화가 여전히 잔존하고 사회 전체의 ‘안전을 보는 눈’이 취약한 실정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안전문화가 정착돼 모든 주체가 안전을 ‘사회 전반의 문화적 풍토’로 받아들일 때 선진국 수준의 중대재해 감축도 가능할 것이다. 이달 전국 39개 지역에서 ‘안전문화 실천추진단’이 속속 출범하고 있다. 지속적인 현장 중심의 활동을 통해 안전활동을 독려해 산업현장의 안전문화를 널리 확산함으로써 안전의식과 안전 감수성을 사업장 곳곳에 내재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서울에서는 지난 10일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안전운행을 시작했다. 안전문화 실천추진단의 순항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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