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철 국제구명구급협회 한국본부 대표

전 세계 인구 5000만 이상의 국가 중 우리나라가 인구밀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고층건물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실제로 국내 인구의 절반은 고층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강동성심병원 응급의학과 조규종 교수팀이 2015년 10월∼2018년 6월 ‘한국인 심정지 연구 컨소시엄(KoCARC)’에 등록된 20세 이상 병원 밖 발생 심정지 환자 1541명의 신경학적 예후를 심정지 발생 건물 층수에 따라 비교·분석을 했다. 연구팀은 조사 대상 병원 밖 심정지 환자를 사고 발생 층수에 따라 1·2층 그룹(887명), 3층 이상 고층 그룹(654명)으로 나눠 응급처치 후 병원 이송시간, 신경학적 예후 등을 비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119구급대가 건물 입구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의 중앙값은 7분으로 같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응급조치하고 환자를 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출발하기까지는 1·2층 그룹이 12분으로 3층 이상 그룹(16분)보다 4분 빨랐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병원 도착 전 자가호흡을 되찾은 환자의 비율은 1·2층 그룹이 16.4%로 3층 이상 그룹(9.9%)의 1.66배였다. 병원에서 정상 기능을 되찾고 퇴원한 환자의 비율은 1·2층 그룹 16.8%로 3층 이상 그룹(8.3%)의 2배를 웃돌았다.

순천향대 의대 응급의학과 문형준 교수 등이 2015년 8월부터 시행한 경기도 심장마비 응급의료 시범사업에 따르면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해 심폐 소생술을 한 후 심장박동이 되살아난 비율은 30% 안팎으로 층수와 상관없이 비슷했다. 하지만 심장마비 재발과 그에 따른 사망률은 고층일수록 높았다. 6~9층 거주자의 사망률은 56%, 15층 이상은 82%로 나타났다.

캐나다의사협회지에 실린 논문을 보면 1~2층 거주자의 심장마비 생존율은 4.2%이지만 3층 이상은 2.6%로 낮았다. 16층 이상은 0.9%였고 25층 이상에서는 한명도 살지 못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신상도 교수는 “우리 병원에 실려온 심장마비 환자 중 10층 이상 아파트 거주자가 살아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고 말했다.

미국심장협회(AHA)에 따르면 심정지(Heart Arrest)는 심장이 전기적 기능장애로 뛰는 것을 멈춰 뇌, 폐, 기타 기관으로 혈액을 펌핑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골든타임인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CPR)과 자동심장충격기(AED) 등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하면 저산소성 뇌 손상을 비롯해 폐·콩팥·간 등 주요 장기들이 기능하지 못하는 ‘다발성 장기부전(심정지후 증후군)’으로 국내의 경우 7.5% 안팎의 환자만 생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층아파트일수록 급성심정지(SCA) 발생시 사망률이 높은 이유로는 병원 밖 심정지 발생의 약 70%가 집에서 발생하며 자동심장충격기 설치가 미비하고 이동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또 119구급대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등 구급대가 환자에게 접근하는 시간이 지체되며 대부분 엘리베이터 내로 구급카트가 들어가지 못해 환자 이송 중 심폐소생술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고층에서는 119구급대가 환자에게 약 4분 정도 늦게 도착하고 이같은 차이가 생존율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

고층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대처키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으로 자동심장충격기를 엘리베이터 내부에 비치할 수 있도록 하며 설계부터 응급카트가 들어갈 수 있는 구급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지정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또 자동심장충격기 관리책임자를 통해 장비의 효율적 관리, 개인적 응급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가족에게 응급처치 교육을 받도록 함으로써 위기상황에서 급성심정지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매년 9월 29일 ‘세계 심장의 날(World Heart Day)’을 맞아 심·혈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며 급성심정지환자 발생시 목격자가 신속하게 ‘Call(119)-Push(CPR)-Shock(AED)’할 수 있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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