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배 한국안전학회 회장

중대재해처벌법이 올 1월 27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중대법은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과 법인을 처벌함으로써 근로자를 포함한 종사자와 일반시민의 안전·건강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법의 시행은 기업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관련 안전보건 조치 이행을 적극 유도하도록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러한 안전보건 중시 분위기가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중대법 관련 위반사건으로 추정되는 중대재해가 빈발하자 이 법의 시행 효과에 대한 의구심마저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오는 2024년 1월부터 중소규모 제조업과 기타업종 50~299인 기업을 대상으로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어느 정도 이행할 것인가가 당면한 문제다. 이에 중소규모 기업과 그 안전관리 특성을 고려한 안전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을 위한 대안적인 전략을 제안코자 한다.

사업주 등에게 강제하는 중대법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일터에서 생명을 잃거나 삶이 바뀐 피해자 발생에 대한 사후 법적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안전보건에 대한 경각심은 최근 안전설비 및 장비 개선, 안전보건관리자 채용 등 안전보건 조치 이행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변화들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고용부의 상반기 재해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체 사고사망자는 동기 대비 감소했으나 중소규모 기업이 대부분인 제조업은 99명(92건)으로 전년 동기 89명(85건) 대비 10명(7건)이 증가한 것으로 중소규모 기업의 재해예방 효과는 기대한 것에 비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대부분은 노동력의 약 81%를 점유하고 있는 중소규모 기업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사고사망자 882명 중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수가 402명으로 전체의 46%(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중대법 시행 이후 안전정책에서 가장 큰 이슈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어떻게 구축하고 그 이행 성과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안전관리체계 구축 문제는 기업의 규모를 막론하고 재해예방 인력 및 예산 등 자원의 한정성과 관련이 있으므로 중대산업재해 예방보다는 법의 충족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소규모 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안전보건수준과 환경이 열악하고 지향하는 목표가 달라 안전관리체계를 차별화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지만 법 적용 조건을 달리할 수 없다. 이 문제의 해결방향은 영국의 중소규모 기업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위험성평가의 기본원칙을 통해 중소규모 기업의 자율적인 안전보건관리 이행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우선 중소규모 기업과 그 안전관리 특성을 고려해 중대법에서 요구하는 현실적 핵심분야를 선별하는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 즉 정부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7가지 핵심요소 중에서 위험요인 파악, 제거, 대체 및 통제, 비상조치계획 수립, 평가 및 개선 범위를 아우를 수 있는 위험성평가 표준을 제공하고 안전관리시스템의 개발 및 공식화와 모니터링을 위한 간헐적인 접촉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위험성평가가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한 방법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설득력있는 접근방식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는 중대법이 명실상부한 자기규제의 마중물이 되고 이를 계기로 과학적 예방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때다. 정부는 중소규모 기업의 입장과 역할의 차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법 적용시 기술적·논리적 입증과 함께 실질적인 지원방안 마련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중소규모 기업에서도 효과적인 사고예방을 위해 위험성평가 기반의 자발적 안전관리체계를 만들어 근로자를 포함한 조직 전체의 참여와 실질적 안전 분위기 조성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안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