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

산업안전보건법의 전부 개정은 건설사업의 책임체제를 발주자까지 확장키 위한 것이었지만 초기 제조공장의 개념을 탈피하지 못하고 수급인의 역할인 안전대장 작성 수준에 머물렀다. 건설현장의 사업주는 발주자이지만 공장법 개념으로는 협력업체 사업주도 아닌 현장소장이 책임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체제다. 

산안법의 불합리한 책임체제에 비해 도급, 용역, 위탁시 종사자까지 안전을 확보한다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는 진일보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조악한 법조문에 더해 취지와 다른 조문의 해석과 적용은 매우 우려되는 수준이다. 

건설사업 전반에 걸쳐 안전을 좌우하는 공사비, 공사기간, 수급자 선정 등에 최고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발주자에게는 여전히 선진국 수준의 안전책무를 물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중대법 발의시부터 보편적인 경영과 안전의 원칙조차 구현하지 못한 조문을 우려했는데 해석과 집행은 법의 이러한 허점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 법 제5조에 대한 해설(고용부, 2021)에서는 ‘발주도 민법상 도급의 일종이지만 발주자는 종사자가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관리‧운영을 하는 자가 아닌 주문자에 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건설공사발주자는 건설공사기간 동안 해당 공사 또는 시설‧장비‧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관리‧운영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건설공사현장의 종사자에 대해 도급인으로 제4조 또는 제5조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해석해 발주자를 면책시키고 있다. 건설생산방식에 전문성이 없는 이들의 탁상공론식 해석의 여파로 중대법 제정 이전보다 현장의 안전관리가 더 힘들어지고 있다.

이같은 해석으로 자체 직원을 상주시켜 강력하게 안전관리를 추진하던 발주자조차 ‘실질적으로 지배‧관리‧운영’하지 않은 척하기 위해 현장에서 직원을 철수시키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중대법 첫 사례에서 기소 근거로 밝힌 내용이다. 근거로 “법 제정 취지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했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준수한 것으로 확인된 경영책임자의 중대법 위반에 대해 불기소함으로써 예측 가능한 법 집행이 이뤄지도록 했다”고 한 것이다. 기소 이유로 한 업체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했으므로 중대법은 무혐의이고 국소배기장치 관리가 안된 것은 산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했으며 다른 업체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 안됐으므로 중대법 위반이며 국소배기장치에 관해서는 산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했다. 

중대법이나 산안법에서 요구하는 본질은 수단으로서 체계 구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체계 운용을 통해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고를 방지하지 못한 체계는 적격한 안전조치로 인정될 수 없으며 사고방지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

중대법 최악의 디테일은 경영책임자 정의다. 경영책임자에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을 담당하는 사람’을 추가해 경영의 원칙과 참모 역할의 안전 원칙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결과적으로 안전부사장(CSO)라는 직책을 신설해 경영책임자가 자신의 책임을 참모에게 전가할 길을 열어줬다. 권한과 책임이 없는 참모가 라인 책임을 뒤집어쓰게 만들어 산안법 제정시 오류를 다시 반복하고 있다. 국가가 경영책임자에게 실질적인 투자는 하지 않고 CSO를 비롯한 껍데기만 갖춰 두면 법을 피해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강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중소규모 조직은 제외되고 의무이행 주체의 대처 방식도 미심쩍지만 중대법이 기존 법규로 못움직인 경영책임자를 전면에 나서게 한 것은 분명한 성과다. 그러나 중대법으로 불합리한 관행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엽적인 것을 논하기 전에 상부구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늦었지만 중대법을 제대로 정비해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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