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섭 안전보건공단 서울광역본부 안전인증부장

귤이 변해서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환경에 따라 열매가 바뀐다는 의미이지만 다시 말하면 아무리 좋고 훌륭한 것이라도 잘못 사용하면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안전분야도 귤과 탱자로 비유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바로 안전인증제도가 그렇다.
안전인증제도는 유해・위험기계에 대해 설계・제조・설치단계에서 사전에 안전성을 심사해 근원적으로 안전성이 확보된 제품만 생산・보급되게 함으로써 산업재해예방에 기여하기 위한 제도이다.

서면심사, 기술능력 및 생산체계 심사, 제품심사 등 총 3단계의 심사가 진행된다. 모든 항목이 인증기준에 부합된 경우에만 안전인증을 획득할 수 있다. 이렇게 안전인증을 받은 제품인데도 현장에서는 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은 왜일까? 

귤이 탱자로 변하기 때문이다. 제조자가 안전하게 설계・제조하고 안전인증기관에서 여러 심사단계를 거쳐 인증을 받았다 하더라도 제품을 사용하는 작업자가 인증제품을 안전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제품은 인증제품이 아닌 위험한 제품으로 변신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를 안전인증 대상 품목인 고소작업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9년간 고소작업대로 인한 사망재해는 172건이 발생했으며 이중 떨어짐과 넘어짐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

사고원인 조사를 위해 현장을 가보면 분명히 안전인증 당시에는 있었던 안전난간이 작업의 편의성과 피구조물 파손 방지를 위해 해체돼 떨어짐 사고로 이어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아웃트리거가 정상적으로 지면에 안착되기 전에 작업대가 올라가지 못하도록 설계된 인증제품은 아웃트리거 인출 감지센서를 해제할 경우 작업대 넘어짐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이밖에 고소작업대 과부하장치 및 작업반경을 제한하는 연동기능을 임의로 변경하면 붐대가 꺾이거나 선회부 볼트가 파단돼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이렇듯 재해 원인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의 사고는 인증받을 당시의 제품 그대로가 아닌 방호장치를 임의대로 해제해 인증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작업자가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편하게 작업하려고 하는 마음이 안전장치 해제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중대재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에 나오는 자동차는 전방 충돌방지시스템, 전자식 주행 안정장치 및 차선이탈 방지장치 등 첨단 안전장치 기능을 보유하고 있지만 교통사고는 계속해 발생하고 있다. 이 또한 모든 사고 방지는 차간 거리 및 신호 준수, 감속운전 등 운전자의 올바른 운전습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위험기계・기구 안전인증(KCs)제도가 시행된 지 어느덧 13년이 흘렀다. 고소작업대, 크레인, 사출성형기 등은 산업현장에서 널리 사용되는 인증대상 유해‧위험기계이다.
작업자가 안전인증을 받은 이러한 제품을 절대적으로 믿고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안전성이 확보된 상태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

아무리 근원적 안전성이 확보된 인증제품이 제조되고 여러단계의 심사를 통해 인증을 받았더라도 그 제품을 사용하는 근로자가 작업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임의대로 방호장치를 해제하고 사용한다면 그 제품은 근로자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위험한 기계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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