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선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 회장

작년에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 금년 1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중처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1년의 준비기간을 부여했기 때문에 법만 시행되면 산재가 획기적으로 감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가 금년 1월 중처법 시행을 앞두고 전 국민 인식도 조사를 시행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78%가 중처법이 산재 감소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응답하였다.

하지만 중처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중대재해는 기대했던 것만큼의 감소를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제조업에서는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현황을 살펴보면, 제조업 전체 사망사고는 300명 이상 대기업에서 대폭 증가했으며 운반·하역작업에서 금년들어 2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전년 대비 257.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가 크게 증가하자 고용노동부에서는 지난 5월 24일 제조업 사망사고 ‘위험경보’를 발령하였고, 현장점검 및 핵심 안전보건 준수사항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사망사고가 큰 감소를 보이지 않으면서 중처법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중처법 제정 시부터 법안을 강력하게 반대해 온 재계에서는 새 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하기 전부터 대통령 당선자에게 중처법 개정을 건의하였고,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는 법 시행 100일이 되었을 때 시행령을 통한 중처법 완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처법 시행 후 이제 겨우 5개월을 넘기는 시점에서 중처법의 효과를 논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5개월만에 중대재해를 대폭 줄일 수 있다면 지금까지 중대재해가 왜 감소되지 못했을까?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더 많이 기울인 후 중처법의 효과를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현 시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대기업은 중처법에 대응하기 위한 첫 번째 수단으로 대형 로펌에 컨설팅을 맡기는 방법을 선택했다. 법률적 자문을 기본으로 하는 로펌은 사업주가 중처법의 처벌을 면하는 방법을 중심으로 컨설팅을 하게 되니 사전예방을 통해 처벌을 받지 않는 않도록 하는 것과는 앞뒤가 바뀐 접근방법이다. 대기업에서 취해야 할 방법은 안전보건 전문기관을 통한 체계적인 예방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지 처벌을 피하는 것에 초점을 둔 법률적 컨설팅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요즘 로펌들은 안전보건 전문가를 채용하여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대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그 비용으로 안전보건 전문기관에 컨설팅을 맡기거나 안전보건 전문가를 사업장에 더 많이 채용하면 실질적인 예방대책을 마련할 수 있고, 사업주의 처벌을 면하게 하는 데에도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액의 비용을 지불하며 대형 로펌에 컨설팅을 맡길 수 없는 중소기업 사업주는 대기업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불안감만 커지게 된다.

중처법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근본적인 예방대책이 시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의 문제는 현장에서 해결해야 한다. 동일한 사고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은 현장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는 것을 위험성평가로 갈음하도록 되어 있지만, 1년에 한 번 시행하는 위험성평가로 유해위험요인을 제대로 확인하기도 어렵지만 위험성을 확인했다고 해도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중대재해는 절대로 예방될 수 없다. 필자가 어떤 건설 현장에 나갔을 때 유리박스로 만들어진 현장 입구 게시판에 위험성평가 결과가 게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위험성평가 내용을 확인하는 근로자는 단 한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형식적이고 보여주기식의 위험성평가는 오히려 문제해결의 방해요소만 될 뿐이다.

세 번째 이유는 중처법에 대한 대응을 서류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처법 시행령에는 반기 1회 이상 점검이라는 내용이 많은데, 이 점검을 단지 체크리스트를 활용하여 서류적 점검을 시행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중대재해를 예방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회의를 통해 점검을 하든지, 현장에 직접 나가서 점검을 하든지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현장의 목소리도 듣고, 근로자들의 어려움도 이해하면서 진정한 점검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이유는 처벌 규정이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처법 제6조와 제7조에 명시된 처벌규정은 하한선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과 벌금의 수위가 매우 약해질 수 있다.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하여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1년 이상의 징역이라고 되어 있지만,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이라고 되어 있어서 징역 대신 하한선이 없는 벌금으로 처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처법이 종이호랑이가 될 우려가 높다.

이런 문제점 들을 살펴보았을 때 중처법의 정착은 처벌을 면하는 방법을 찾는데 관심을 갖기 보다는 우리 직장에서는 단 한 명도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2024년에는 5명 이상 50명 미만 사업장도 중처법의 대상이 되는데, 그 이전까지 중처법에 대한 대응문화가 바람직하게 이루어져서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중소규모 사업장이 실질적인 재해 예방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패트롤처럼 외부에서 일시적인 점검을 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위험 사업장에 전문가를 상주시켜 안전보건이 정착될때까지 1년이고, 2년이고 상시적인 지원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지난 2~3년동안 시행한 패트롤 점검이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형태의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은 산재예방기금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현장에 상주하여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확실한 지원을 시행하는 것이 중처법의 실효성을 높이고, 산업재해를 예방하는데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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