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만형 안전보건공단 경북동부지사 안전보건1부장

명의(名醫)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편작(扁鵲)의 말처럼 진정한 명의는 병이 커지기 전에 미리미리 예방하고 치료해서 큰 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병을 다스리는 근본이자 시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고를 당하거나 크게 아프지 않으면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경험한 후에야 예방의 중요성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산재보험 승인을 기준으로 2021년 산재 사고사망자 수는 828명, 사고사망 만인율 0.43‱이다. 사고사망 만인율로 보면 100만명의 근로자 중 43명이 사고로 사망했다는 의미이다. 사고사망자는 전년보다 54명이, 만인율은 0.03‱포인트 감소해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정부에서 2018년 수립한 ‘2022년까지 산재 사고사망 만인율 절반 감축 목표’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종별로는 건설업(50.4%)과 제조업(22.2%)에서 70% 이상이 발생했으며 재해 유형으로는 추락(42.4%)과 끼임(11.5%)이 전체의 53.9%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사망사고가 비교적 크게 줄었지만 아직도 추락과 끼임사고로 많이 사망하고 있는 셈이다.

사고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재래형 재해에서 발생했으며 특히 사고사망자 828명 중에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80%가 발생했다. 추락·끼임과 같은 재래형 재해만 예방해도 사고사망 절반 줄이기 목표치는 달성하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현장에서는 “현재까지 무사고로 무탈하게 지내왔는데 무슨 안전에 투자해서 비용을 낭비하는 것이냐?”며 질타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업주를 둔 근로자는 매우 불행한 일을 겪는다. 

어느날 자동차부품제조 사업장에 안전점검을 갔다. 사고가 있었다. 끼임사고였다. 사업장 담당자에게 사고 원인에 대해 물어보니 담당자의 답변은 원인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고는 2년 전에 일어났는데 아직도 사고 원인조차 모른다는 자체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사고를 당한 분은 지금까지 치료하다 최근에 퇴사 처리됐다고 당당하게 답변하는 모습에 정말 놀랐다.

소수의 사업장에서는 작업능률을 높이는 것을 우선시해 프레스작업시 안전장치를 제거하거나 센서 작동을 중지해 끼임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작업 능률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무시하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사업주의 안전사고 예방에 대한 무관심과 무감각은 분명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눈에 띄지 않고 화려하지 않지만 간과하면 얼마나 큰 불행을 겪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소한 것을 소홀히 하다 보면 큰 것을 잃는다. 사소한 것이라도 충실하고 성실하게 점검하는 습관을 안전을 위한 철칙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제일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이 사업주의 의식이다. 828명이라는 사고사망자의 대다수가 사업주의 무관심과 열악한 근로환경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 사업주는 안전은 비용이 아닌 ‘투자’이며 ‘경영의 일부’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갖고 근로자를 안전사고 예방에 적극 참여케 하고 독려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고 예방은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만의 업무가 아닌 사업주와 관리자의 기본적인 업무임을 명확히 해야 모든 구성원이 안전사고 예방에 하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사업주는 ‘안전경영’ 정착이 곧 기업 이미지 및 제품 신뢰도 향상에도 크게 기여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안전에 대한 투자와 관심에 한층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별다른 사고나 질병 없이 지내다 보면 안전에 대한 투자와 관심에 무감각해진다. 조금만 방심하면 사고는 발생한다. 작게는 추락·끼임과 같은 재래형사고에서 크게는 광주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사고, 안산 폐기물업체 폭발사고와 같은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엄청난 피해를 보고 사고를 수습하면서 고충을 겪고 나서야 후회하고 비로소 예방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나마 사고 없이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안전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안전에 투자하고, 대비하고, 점검했기 때문에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재래형 재해는 작은 것을 지키지 않는데서 시작된다. 추락 위험 장소에 안전난간, 덮개, 추락방호망 등 추락방지설비를 하지 않아 발생하는 추락사고, 프레스작업 등에서 안전장치를 제거하거나 또는 작동을 중지해 발생하는 끼임사고 등은 한번 더 확인하고 원칙을 지키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면 사고는 반복된다. 

사고사망 재해를 끝낼 것인가, 끝없이 반복할 것인가는 예방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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