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환 안전보건공단 경기북부지사장

얼마전 경남 김해와 창원의 세척제 제조 및 취급 사업장에서 급성중독사고가 발생했다. 언론에서도 크게 언급됐는데 이 사고로 인해 안그래도 힘든 팬데믹 시절에 모두를 더 힘들게 해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 사건을 복기하던 중 이번 중독사고와 판박이 형태의 사고 몇개가 문득 떠올랐다.

2000년대 세척제를 취급하는 한국 전자공장의 필리핀 현지 법인에서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필리핀 현지 공장의 상황을 진단하면서 사용하는 세척제를 한국에 가져와 분석했는데 제조공장에서 제출한 성분과 다른 물질이 분석됐다. 이 사건의 책임자였던 나는 전자공장을 찾아가 “당신들이 제조한 물질에 보고서에는 없는 물질들이 포함돼 있어 현장을 확인하겠다”고 전했다. 그러자 현장 담당자는 세척제의 성분에 다른 대체 원료를 투입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세척제의 납품원가를 낮추기 위해 일어난 일이었는데 전자공장은 이 사실을 인지하고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일이 해결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또 몇년전 근로자들이 메탄올의 화학 성분이나 유해성을 모르고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작업하다 중독사고가 발생해 실명까지 이르기도 한 경우도 있다. 

이번의 급성중독 사고 역시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산업현장은 급성중독에 취약하다.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충분히 알고 있는 대기업은 물론 그 위험성을 전혀 모르는 작은 기업도 그 취약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근로자들이 머물고 있는 사업장 내의 작업환경은 중금속처럼 급성중독의 원인 물질이 분명한 경우도 있고 혼합물질 형태라 정확히 어떤 성분이 근로자에게 위험성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물질도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이러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급성중독물질에 대해 우리의 산업현장에서도 그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대처한다면 이런 사고는 점점 줄어 마침내는 사라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크게 세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제조, 유통, 저장, 사용, 폐기 형태를 전 생애 주기별로 철저하게 관리하며 조금의 틈도 없도록 매뉴얼화해야 한다. 둘째 관리자는 사업장에서 취급하고 있는 위험물질의 유해성을 근로자에게 공개하고 이 내용을 해당 공정이나 시설 등 작업공간 내 곳곳에 게시해 근로자 스스로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험물질에 대한 현장의 관리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 감독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다.

올해 안전보건공단에서는 고독성 물질 취급사업장 점검과 함께 화학물질의 노출농도를 측정하고 해당 근로자에게 측정 결과를 알려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가 고독성물질이 얼마나 노출되는지 알고 싶은 경우 안전보건공단에 신청을 하면 현장에서 노출농도를 측정하고 알려주는 것이다.

특히 공단에서는 예산문제로 보건관리가 어려운 사업장을 대상으로 보건전문기관이 그 관리를 해주도록 하는 간접지원 방식과 시설개선을 위한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보건관리에 사각지대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정부, 사업장, 근로자 등이 많은 관심과 서로의 마음을 합심해 더 이상은 이러한 안타까운 급성중독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를 위해 안전보건공단에서도 여러 방식으로 현장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마음속 깊이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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