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도 안전보건공단 경북동부지사장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까지 유예돼 있어 지금은 일부의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있지만 사회적인 파장은 만만치 않다.

우리 지역의 기업 간부들을 만나 보니 그들은 혹시 자신이 모시고 있는 대표이사에게 중대재해로 인해 처벌받게 되는 일이 생길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월급으로 살아가는 일반 샐러리맨 입장에서 직장생활의 결정권을 갖고 있는 최고경영자에게 징역이나 벌금을 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 매우 중대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도 유수의 법무법인에 의뢰해 중대재해로 인한 책임이 경영책임자에게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법적 대응방안 마련에 매달리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월 우리 지사 관할 사업장에서 정비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원재료를 운반해 투입하는 장비와 구조물 사이에 끼어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다행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일 이전에 발생한 사고라 이 법이 적용되지 않겠지만 산업재해임에는 틀림없다. 사고 현장을 방문해 사고 설비와 사고 개요를 확인한 후 20여일이 지나서 관계자를 만나 중대재해예방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끼임재해를 예방키 위해 ‘정비작업시 운전정지’ 확행에 집중하겠다고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92조는 기계·기구·설비에 대한 ‘정비 등의 작업 시의 운전정지 등’이고 제172조는 차량계 하역운반기계 등에 대한 ‘접촉의 방지’로서 특히 제조업에서 많이 발생하는 끼임이나 충돌재해를 예방키 위한 규정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기본적으로 사업주의 의무이지만 재해가 발생해 책임 소재를 따질 때 사업장 관계자들이 갖는 느낌은 다소 다르다.

전자는 ‘운전정지를 이행하지 않은 혹은 요청하지 않은 작업자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이고 후자는 ‘접촉의 방지 조치를 하지 않은 회사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이다.

그동안 많은 산업재해를 접했고 중대재해조사에도 참여했다. 경험에 의하면 중대재해 발생시 재해 관계자들은 사실관계나 원인을 규명하는 것보다 재해로 인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라도 사람이 죽었으니 당장 두려움이 앞서고 처벌을 면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병들었을 때 병증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지 않으면 병을 고칠 수 없듯이 정확한 재해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면 동종의 재해를 근절할 수 없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의 책임이 재해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계·장비나 설비를 안전하게 하는 것 보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작업자를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실수를 하므로 재해예방을 위한 완벽한 작업자 통제는 불가능하다. 당연히 우리는 기계·장비나 설비에 풀 프루프(fool proof) 및 페일 세이프(fail safe)를 적용키 위해 노력해야 한다. 즉 사고의 원인이 작업자의 실수나 규정 위반이 아닌 사업장의 안전보건조치 미비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풀 프루프는 인간이 실수를 범해도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어 사고나 재해로 연결되지 않는 것을, 페일 세이프는 시스템에 고장이 생겨도 어느 기간 동안은 정상기능이 유지돼 사고나 재해까지 발전되지 않는 기구를 말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현재 사고(event) 원인에 대한 사고(think)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권한이 누구보다도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있기 때문에 체계 등의 미비로 중대산업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또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묻겠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의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지켜야 할 안전 및 보건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①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②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③중앙행정기관ㆍ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ㆍ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 ④안전ㆍ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이다.

보다 구체적인 사항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에 정해져 있다. 중대산업사고가 발생하면 설사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관리체계 등을 적정하게 구축했다 하더라도 사고가 발생한 이상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에서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이를 입증하고자 노력할 것이고 사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수사하고 처벌한 사례가 전혀 축적돼 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사업장에서 아무리 유력한 법무법인을 선임하더라도 대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중대산업사고 발생 이후의 대응방안을 고민하는 것보다 애초에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충실하게 하는 것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처벌되는 것을 막는 근본적인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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