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안전보건공단 서울남부지사장

#1.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나 30여년이 지난 고등학생 자녀 세대나 대학입학을 위해 공부하는 영어, 수학의 기본서들이 있다. 성○영어, 수학의 정○ 등이 그것들이다.

이 책들을 보면 기본-핵심-종합편 또는 기본-실력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실제로 기본편만 충실히 공부하면 종합이나 실력편은 굳이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본을 완전히 익힌 후 문제풀이 등을 통해 실전감각을 익히는 것인데 기초적인 영문법과 수학공식도 헷갈려 하면서 두꺼운 책만 보는 학생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 책을 보면 대부분 앞쪽 명사부분, 집합부분만 새카맣게 공부한 흔적이 있고 그 뒤로는 하얗다. 말하고 보니, 옛날 내 이야기인 것 같다.

#2. 얼마 전 유튜브 종합격투기 채널에서 재미있는 영상을 본적이 있다. 태극권(태권도가 아님), 영춘권, 점혈권, 심지어 장풍 등 중국의 무술 고수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하나 같이 자기 무술이 최고이며 당할 자가 없다고 말한다. 자기 제자들과 대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스승의 동작 하나에 신기하게도 모두 나가 떨어진다. 과연 실전에서도 저렇게 될까?

이들 고수들과 격투기 선수와의 시합이 성사되었다. 격투기 선수들은 대부분 무명이거나 취미로 하는 수준의 선수들이다. 시합이 시작되기 전 선수들은 차분히 링에 올라오는 반면 무림 고수들은 화려한 동작을 하며 올라온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매일 전국에서 올라오는 ‘중대재해 속보 메시지’를 접하다 보면 사망사고의 심각함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사고내용이다. “지게차에 깔림”, “사다리에 올라가 지붕부재 조립작업 중 떨어짐”, “1.8m 높이 이동식 비계에서 떨어짐”, “지붕보수작업 중 떨어짐”, “기계정비 중 끼임” 등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인 3대 안전수칙과 관련된 사고가 대부분이다.

통계를 봐도 답답한 마음은 가시지를 않는다. 작년 한해도 필수보호구 착용으로 예방 가능한 추락·끼임 사고가 여지없이 절반을 차지했다.

그동안 민간, 정부, 공단, NGO 단체 등 각 분야에서 사망사고 감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성과도 있었다. 2021년 사망사고가 54명 감소한 82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사고사망 감소의 기본만 충실히 연마(練磨)했어도 적은 비용으로 훨씬 더 좋은 성과가 있지 않았을까? 가성비 차원에서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대형사고 예방을 위한 고도의 산재예방기법도 필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을 볼 때 어디에 역량을 집중해야 ‘사고사망 감소’라는 실전에서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도 정부와 안전보건공단에서는 시스템비계, 사다리형 작업발판 및 채광창 안전덮개 설치와 뿌리산업의 노후·위험공정 개선 등 일터안전의 기본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현장에서도 ‘작업 전 10분 점검’ 등을 통해 ①추락위험 방지조치 ②끼임위험 방지조치 ③필수 안전보호구 착용의 3대 기본 안전수칙이 생활화될 수 있도록 기대해 본다.

지금도 사다리 하나 덜렁 놓고 올라가서 작업하는 근로자들이 주위에 수두룩하다. 제발 기본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아까의 결과는? 시합 시작 후 얼마 되지도 않아 무림의 고수들이 격투기 선수들에게 기본적인 펀치와 로우킥‧하이킥을 처참히 맞고 실신 KO패로 끝났다. 실소를 넘어 불쌍하고 애잔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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