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진 대구안실련 공동대표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많은 기업들이 이에 대한 대응책 수립에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업별로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과 현장점검을 강화하고 업종별 대응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자체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좌불안석이다.

최고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로 최고경영자(CEO)를 안전관리 총괄책임자로 전담 선임하고 조직, 인력 확충 등 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중대재해를 막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제대로 된 검토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성급하게 시행함에 따라 산업현장 혼란만 부추기면서 예방효과보다는 처벌에 대한 불안감으로 오히려 역효과가 날까 우려스럽다.

중대재해 중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는 고용노동부, 공중이용시설 등에서 발생하는 시민재해는 관련 업무를 다루는 국토교통부(철도·도로 등), 환경부(원료·제조물), 소방청(다중이용업소 화재 등)이 각각 담당하고 지자체 대응은 행정안전부가 총괄하고 있지만 모호한 법 규정으로 일선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로 인해 예방활동에 중점을 둬야 할 대책이 형사처벌을 피하고자 법률 자문을 받기 위해 대형 로펌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웃지 못할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이 현실이다.

또 아직도 정부와 경영계에서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안전시설 투자와 엄격한 법 제도, 인력과 조직 보강 등 업무시스템을 개선하면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산재사고 사망 절반(50%) 이상 줄이기를 위해 많은 투자와 대책을 내놓았지만 2019년 855명, 2020년 882명, 2021년 11월까지 790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815명)과 비교했을 때 25명 감소한 것이 고작이다.

안전은 법 제도를 강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바로 사람이다. 일선에서 책임지고 있는 안전보건 전문가에 대한 푸대접과 인재 양성 없이는 안전을 지킬 수 없고 미래도 없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라 각 기업별로 최고책임자와 임원급을 영입하고  인력을 보강하는 등 조직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고생을 많이 한 일선 관리자는 임원 승진에서 배제되고 경험이 없는 타 업무 책임자 또는 외부 영입에 의해 임원으로 임명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부서장 보직 자리도 젊은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있다고 하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일선에서 근무하는 경험 많은 안전전문가를 홀대하면서 안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 아닌가. 다양한 전문성과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는 이제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가는 사회분위기로 흘러 가고 있어 말로만 안전이 중요하다고 외칠 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다수 기업에서 인사·재무를 맡으면 임원과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쉽게 올라가지만 안전업무를 맡으면 일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서장 직급이 마지막으로 인식돼 경험 많은 안전전문가는 갈수록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안전전문가가 안전 최고책임자 맡아야

안전전문가를 우대하고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할 대기업이 이 지경이라 일선 전문가들은 오죽하면 ‘차라리 사고가 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볼멘 소리를 하겠는가?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밖에 없다.

50세가 되면 퇴직 때까지 무보직으로 물러나 있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니 차라리 대기업군에는 법정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유자격 기준과 별도로 20년 이상 경력자를 필수 인력으로 지정하고 안전책임자도 실무경험이 풍부한 자가 지정할 수 있도록 정부에 제도 개선을 건의한다.

필자 역시 안전보건 업무를 접한 지 40년이 넘었고 시민안전활동을 위해 아직도 현장의 안전지식을 배우고 있지만 안전은 전문지식과 풍부한 실무경험이 밑바탕이 돼야 제대로 된 업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안전전문가 타업무 동일한 인사정책 안된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축적된 노하우를 쌓아야만 가능하다.  숙련되고 경험이 풍부한 안전전문가를 이렇게 푸대접하고 조기에 업무에서 내려놓도록 하는 인사제도는 기업 입장에서도 큰 손실이 아닐뿐 아니라 제대로 된 안전업무 수행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안전을 책임지고 중심을 잡고 실천해야 하는 스태프조직이 미래 비전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누가 열심히 일할 것이라 생각하는지 경영층과 인사 고위임원에게 묻고 싶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경험이 풍부한 안전전문가가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퇴직한 안전전문가 활용방안도 정부와 기업체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때가 아닌가? 
안전한 기업, 안전한 사회,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안전을 비용으로만 보지 말고 인사·재무 전문가처럼 안전전문가를 진정으로 동등한 대우를 해줄 때 안전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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