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현 한국안전학회 회장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산재통계에 따르면 사고로 숨진 근로자 882명 중 4대 악성사고 사망자는 500명에 육박한다. 이들 4대 악성사고는 원인이나 발생장소 등이 특정돼 있음에도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되고 있다는 사실은 사업장에서 안전이 얼마나 형식적이며 외면되고 있나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이에 그간 공들인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이 유명무실하지 않고 4대 악성 사망사고 뿐 아니라 모든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도록 안전이라는 판을 새롭게 짜야 할 것이다.

모든 근로자의 생명 소중히 여겨야

사업장의 안전은 근로자, 사업주, 정부 모두의 책임과 의무로 확보된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5인 이하 또는 50인 이하 중소사업장에는 제어되지 않은 유해ㆍ위험인자가 산재돼 있다. 이런 사업장의 유해ㆍ위험인자를 모두 제거하기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근로자수를 기준으로 선을 긋고 정부가 뒷짐지면서 안전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중소사업장에 전가해두고 있는 현 상황을 이제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 근로자들이 위험에 방치된 채 살아가지 않도록 안전정책으로 중소사업장의 안전수준을 보듬고 살펴야 한다. 어느날 가족의 구성원이 사라지는 일이 내게 닥친 일이라 생각하며 안전정책의 한 장 한 장을 퇴고(推敲)해 볼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안전보건관리자에 힘이 돼야

우여곡절 끝에 제정돼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를 예방코자 도입된 법임에도 사업장에서는 사고예방에 전력질주하기보다 처벌에 대응하는데 치중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유해ㆍ위험인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자는 유해ㆍ위험인자가 비교적 적은 사업장으로 이직한다고 한다. 로펌에 중대재해처벌법 전담조직을 꾸리는 등 로펌이 더 분주하다고도 한다. 일시적 현상이라고 하지만, 법이 지향하는 바와 다르게 움직인다. 사업장에서는 필연적으로 사고를 피할 수는 없고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이다. 끝까지 지연시키는 것이 예방하는 것이기에 안전공학에서는 모든 사고는 예방가능하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 법이 처벌에 방점을 둔 것이 아니고 안전을 확보해가는 그 과정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인식해야 할 것이며 그 과정의 중심에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자를 둬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안전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도, 경영자 및 근로자의 안전의식 개선도, 조직 안전문화의 확산도, 그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자의 능력과 자긍심에 달려 있다. 사업장 법무팀 보강에 돈쓸 것이 아니라 안전전문인력의 확충 및 능력 배양, 임원진의 안전보직경험 의무화 등 혁신적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안전보건관리자가 어깨를 펴고 능동적 안전을 펼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안전보건관리자에게서 안전혁신의 답을 찾아야 할 때다.

4차 산업혁명시대 “현재의 안전도 봐야”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 및 서비스가 창출될 것이고 이로 인해 새로운 유해ㆍ위험인자에 의한 사고가 발생할 것으로 예견되기에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매년 과분할 정도의 안전점검, 안전진단 및 관리감독 등을 통해 사업장에 헤아릴 수 없는 저급의 데이터가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유해ㆍ위험인자의 사전 발굴 및 제거를 위한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다반사다. 빅데이터 기술 등의 적용으로 정보를 고급화하면 4대 악성사고와 같이 매년 반복되는 동종 및 유사사고를 예방하는데 일조할 것이므로 현재의 안전에 ICT 신기술을 우선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술은 미래를 볼 때 가치가 있고 안전은 현재를 볼 때 문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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