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진 법무법인 사람 안전문제연구소장

삶의 희망이 가득한 일터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사고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일터에서 일하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불상사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노사정 및 시민단체, 언론은 집단지성을 모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잇따라 정부 감독조직의 인력 확충, 기업의 안전 투자 확대 발표가 이뤄졌고 노동자의 적극적 안전·건강권 확립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도 기술공학적 대책, 안전심리적 대책, 정부의 강력한 감독, 노무구조관계의 책임성, 경영층의 리더십, 노동자의 참여, 안전보건경영시스템 구축, 안전준법경영의 확립 등 구체적 대책을 언론에 봇물처럼 쏟아냈다.

이미 수많은 대책들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필자에게 원고 청탁이 들어와 망설였다. 실제 사업체를 경영해보지도 않았고 극한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가 돼보지도 않은 나에게 무슨 뾰족한 처방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생각이 목숨을 건질 수도 있겠다고 여겨 경험을 바탕으로 일터 사망사고 예방을 위한 두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 안전보건정보를 맘껏 누리게 하자. 일터에서 안전보건대책들이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안전보건에 관한 정보 제공이 우선돼야 한다. 이왕이면 안전보건정보가 적시에 제공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

네비게이션이 없었던 시절, 운전자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의 지도를 찾아보고 머릿속에 암기해야 했고 주행 중에는 교통표지판의 정보를 수시로 살펴야 했다. 이 모든 정보는 운전자 본인이 스스로 수집, 습득해야만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운전자가 도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학습하지 않아도 네비게이션이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줘 목적지까지 수월히 도착할 수 있게 됐다.

일터에서의 안전보건정보도 마찬가지다. 멀티·위험사회에서 수많은 유해·위험정보를 개인이 모두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라도 원하는 안전보건정보를 검색하면 손쉽게 찾을 수 있고 요청시 전문가 도움을 적시에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충분히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안전보건정보에 있어 네비게이션과 같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4차 산업혁명시대인 현재 기술적으로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특히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포노사피언스인 현 세대에 특히 적합한 시스템이 되리라 생각한다.

둘째 돈을 지불하는 위치에 있는 자가 유해와 위험을 제거해야 한다. 얼마 전에 조그마한 사업을 하는 친구가 공장의 배관을 유지·보수하는 일의 보조자로 오라 해서 한번 가가게 됐다. 다행히 아무런 사고 없이 작업을 마쳤지만 작업 중 유해·위험을 발견했음에도 도급인에게 말할 수 없었다. 친구는 그 공장에서 가끔식 배관공사 일감을 얻는다고 한다.

만일 그날 내가 도급인에게 유해·위험을 제거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모든 조치를 취한 후 작업을 하겠다고 했다면 과연 다음에도 친구에게 일감이 제공될 수 있었을까? 한번이면 당당하게 안전보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겠지만 지속적으로 일감을 받아야 하는 수급인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 “돈을 지불하는 위치에 있는 자만이 유해와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와 관련된 또 한가지 경험담이 있다. 다른 친구가 신장개업한 식당을 가보자고 해서 따라갔다.

새롭게 꾸며져서 깨끗했으나 페인트 냄새에 머리가 띵한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내가 환기가 필요하겠다고 말하자 주인은 에어컨을 가동 중이라 문을 열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이 냄새와 함께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손님들의 건강에도, 기분에도 좋을 것이 있냐고 한 마디를 더했다. 이 말에 주인이 문을 열어 환기를 하자 옆 자리 손님들도 엄지를 척 들어줬다. 그 날 페인트 냄새로 죽을 일은 아니지만 돈을 지불하는 위치가 되니 개선에 대한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서도 바로 안전보건은 돈을 지불하는 위치에 있는 자가 확보해야 할 당사자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저작권자 © 안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