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

“누구의 책임인가를 명확히 하고
규정된 안전책무 이행여부 확인하는
‘제3자 감시’ 장치가 필요하며
건설사업 참여자 모두에게
자신의 안전책무 명확히 인지시켜야
이 세가지 장치를 누락 없이 구현해
잘못된 건설산업 ‘관행’ 바로 잡아야”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서 과거의 불합리한 ‘관행’이 무너지는 현상을 목격해왔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중대사고 때마다  ‘관행이었다.’고 했다. 건설산업도 이제 ‘관행’을 청산할 때가 되었다. 이천 물류센터공사현장 화재참사에서는 38명의 건설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천화재참사가 겨우 1년 지났는데 이번에는 광주 학동 철거현장에 인접한 정거장에서 9명의 시민이 참변을 당했다. 학동 참사 이후에도 건설현장에서의 사망사고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전방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는 중대재해는 기존의 제도나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한다. 반복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사고 때마다 새로 제정된 제도와 정책에도 불구하고 건설사고가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건설사고의 근본원인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제까지의 제도가 실효성이 없었다면 제도를 고치거나 새로 만들기 전에 근본 원인부터 제대로 규명해야 한다. 기존 제도에서 무엇이 빠져서 실효성이 없었는가를 찾아야 한다.

사고의 근원이 비리와 부조리에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발주자로부터 중층하도급 협력업체에 이르는 청산되어야 할 건설산업의 부조리는 산업의 ‘관행’이자 이면질서로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위의 두 사고 사례에서도 비리와 부조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안전관리활동만 대책으로 논의되었지 이면의 부조리까지는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건설사고를 방지하려면 건설사업의 수행과정에 내재된 부조리를 척결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실효성 없는 제도나 정책이 생산되고 있는 환경이다.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요인은 직접 제도와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조직이다. 태안석탄화력발전소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공무원이 전문성이 부족한 이유는 승진을 위해서 운영되는 인사제도에 있다. 행정부에서는 제도나 정책을 입안할 경우 원칙보다 정무적 고려가 우선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회에서는 원칙보다는 정무적으로 결정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법률들이 자주 껍데기만 남았다고 비난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결코 공무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약점을 누군가가 보완해줄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요인은 정책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전문가, 민간기업의 실무자와 단체들이다. 민간기업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업역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소속된 집단의 경영상의 편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올바른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은 건설안전 전문가이다. 작금의 상황은 건설안전 전문가들의 진단이나 조언이 신통하지 못했거나 정책 입안자들이 제대로 경청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올바른 제도라면 건설산업의 생산방식에 부합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전부 개정에도 불구하고 제조공장용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설관련 법령에서도 초기에 누락시킨 발주자의 책임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선진국들이 따로 다루고 있는 건설안전분야를 제조업틀에 우겨 넣으려는 편협한 제조마인드의 전문가들이 있었다. 사고사망자를 반으로 줄이자고 외치면서 사고사망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안전분야의 전문성은 취약하기 그지없다. 노동안전 주무 부처나 산하기관에는 있었던 건설안전 전담부서조차 사라졌다.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전통적인 하인리히의 사고예방원리에 의하면 ‘안전조직-사실의 발견과 분석-시정책 선정과 실시’의 순환과정이다. 건설사고를 예방하려면 건설안전조직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실제 근로자수 대비 사고사망자수로 비교하면 건설사고 방지는 일반산업보다 10배 이상 어렵다.

건설사고의 근본원인은 결코 안전수칙의 위반이나 기술적인 실수에 있지 않다. 발주자를 정점으로 한 건설사업 이해당사자의 상호 견제로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 공사현장에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의 무분별한 개입은 부족한 공사비와 공기로 신음하는 건설기술자와 작업자에게는 더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해야 할 빌미를 제공할 공산이 훨씬 크다.

거시적 관점에서 세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건설안전제도를 보완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누구의 책임인가를 더 명확히 하는 것이다. 특히 이제까지 법적 책임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건축주를 포함한 발주자가 자신의 사업에 대해 포괄적으로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건설사고는 공사비와 공사기간의 부족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발주자가 안전대장을 만들거나 부족한 공사비는 제쳐두고 안전비만을 고집하는 것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둘째, 규정된 안전책무의 이행여부를 확인하는 ‘제3자 감시’ 장치가 필요하다. 앞의 사고사례에 드러난 바와 같이 법적 의무의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견제하는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근본 원인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건축주에게 책임을 부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건축주는 책임이 없기 때문에 도급을 주면 그만이다. 안전책임까지 도급되기에 안전에 신경을 쓸 필요가 전혀 없어진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안전관리자나 안전보건조정자에게는 ‘제3자 감시’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건설기술진흥법 등에서도 안전감리는 뒷전이며 감시체계는 미비하다.

셋째, 건설사업 참여자 모두에게 자신의 안전책무를 인지시키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천 공사장이나 학동 사고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현장의 협력업체나 작업자는 공사의 기본이 되는 법적 요건에 대해 무지하였다. 우리의 건설안전 관련 제도에는 책임만 나열하였지 건설사업 참여자들에게 각자의 책임을 주지시키고 책임의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제3자 감시기능이 미비하다. 영국이 사고사망십만인율이 우리나라의 1/20 수준인 것은 발주자에게 포괄적 책임을 부여하고 공사신고 제도로 건설안전 전문가를 통해 발주자로 하여금 자신의 책무를 인지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를 내재화시켰기 때문이다.

건설산업의 비리와 부조리를 척결해야 건설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제정을 준비 중인 건설안전특별법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기술진흥법 등 기존 건설안전 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위에 제시한 세 가지 장치를 누락이 없이 구현하여 건설산업의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 깨야 할 관행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건설사고 방지 대책접근의 ‘관행’이고, 또 하나는 건설사업 실무의 ‘관행’이다. 제도, 정책, 건설사업 수행 방식 등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관행’을 타파할 수 있는 건설사업의 특성에 적합한 ‘제도가 아닌 장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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