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형 산업안전·보건지도사협회 건설이사·생명안전연구소 소장

최근 들어 산업재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 2016년 구의역 김군사고, 2018년 태안화력 김용균사고, 2021년 평택항 이선호사고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관심과 분노는 그 어느 때보다 높고 안전에 대한 갈망 또한 높다.

그러면 이전에는 산업현장이나 건설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일하다 죽어가는 사람이 없었을까?

지금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몰랐던 것은 사고가 발생해도 은폐하기에 급급하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사회문제화되지 않아 오롯이 개인의 실수와 불운으로 치부되며 묻혀져 왔기 때문이다.

폭증하는 산업재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분노는 몇 년간 산업안전보건법, 건설기술진흥법 등 관련 법률들을 대폭 손질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의 특별지시를 비롯해 고용노동부와 건설교통부에서 실시되는 각종 안전점검, 안전서류, 평가, 안전시설에 대한 지원 등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 감소률, 특히 건설업 사고사망 감소율은 처참하다. 사고사망은 감소는 커녕 2020년 건설업 사고사망은 2019년 대비 되레 7%나 늘어났다.

도대체 왜 건설현장 사고사망은 줄어 들지 않는 걸까. 우리나라 건설현장이 특별히 위험한 조건들이 많아서일까.우리나라 작업자들의 성향이 특별히 불안전한 행동을 많이 하는 성향이어서일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안전선진국들에 비해 사고사망만인율이 2~3배 높다. 이는 산업재해 사고사망이 근로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구조적 문제, 사회시스템적 문제라는 반증이다.

구조적이고 사회시스템적인 문제의 핵심은 산업재해의 원인을 근로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는 점이다.

이런 경향은 1931년 발표된 하인리히 이론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하인리히 이론은 90년간 산업안전의 바이블처럼 여겨져 왔다. 하인리히는 1:29:300의 법칙과 함께 사고 발생의 도미노이론도 발표했다.

여기서 하인리히는 사고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개인의 불안전한 행동 88%, 불안전한 상태 10%라고 해 산업재해 발생원인의 대부분을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개인의 불안전한 행동을 제어하는데 산업재해 예방의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2021년은 1931년의 사회상황과 비교가 안된다. 1931년이 자동차 구경하기도 힘든 시절이었다면 2021년은 하늘을 날아 다니는 드론택시에 대한 교통정리를 대비해야하는 때다. 1931년대에 적용되던 이론이 2021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산업재해는 자연법칙이 적용되는 분야가 아니다. 산업재해는 사회시스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산업재해에 관한 이론은 사회시스템 변화와 함께 과감하게 변해야 한다.

이제 산업재해에 대한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첫번째가 인간의 ‘불안전한 행동’에 대한 인식전환일 것이다.

인간은 어차피 불완전한 존재다. 인간은 완전할 수 없기에 실수한다. 인간이 언제든 실수할 수 있는 존재라면 실수를 하더라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호장치를 갖춰야 한다.

일례로 자동차는 주차상태가 아니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작업을 시작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야 한다. 리즌의 스위스 치즈 이론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고는 여러 방호장치의 불이행이나 미흡한 조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다.

각 단계의 프로세스가 하나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 사고는 개인의 실수가 원인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갖춰야 할 여러 안전조치들이 복합적으로 이행되지 못해 발생하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아직 이런 시스템적인 안전을 확보하지 못했기에 사고사망이 줄어 들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불안전한 행동, 즉 ‘실수’는 사고의 원인이 아니라 사고의 결과다.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 사고가 일어나고 사고의 결과 인간의 행동을 불완전한 행동, 즉 실수로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건설현장은 산재예방의 초점을 작업자 행동 제어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실수를 차단하는 방호장치를 겹겹이 갖춰가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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