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정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 학회장

‘나에게는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믿음으로 오늘은 살짝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점검을 하지 않고 그냥 사용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것을 우리는 ‘안전불감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안전·건강만은 이렇게 무감각해지도록 나를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전염병은 나라의 흥망성쇠와 관련이 있고 세계 정치질서를 바꾸며 역사를 뒤바꾸기도 한다. 300년이나 중국을 지배했던 명나라는 페스트로 인해 몰락을 맞았다. 아메리카 대륙도 유럽인이 들어오면서 가져온 천연두 등의 전염병으로 인구가 1/10로 줄어들고 잉카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다. 1350년경에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1/3을 사망에 이르게 했지만 반면에 노동력 급감으로 이어져 노동자의 협상력이 커지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세계는 날씨 화창한 5월의 이 시점에 다시 코로나19의 4차 대유행이라는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백신 접종률이 높아 마스크를 벗고 다닌다는 외국의 사례가 신문에 보도되면서 봉쇄만이 유일한 대비책이었던 시절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 느슨해지나보다.

우리도 백신접종이 속도를 내고 오랜 거리두기에 진력이 난 사람들이 이제 거리낌 없이 지인들과 어울리고 나들이를 하고 있다. 또 매일 아침 발표되는 확진자수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태도에는 어김없이 ‘예외주의’가 스며 있다. 나는 마스크를 잘 썼으니까 다른 사람은 걸려도 왠지 나는 안걸릴 것이라는 생각, 한두번쯤 거리두기 지침을 지키지 않아도 우리 가족은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 예외주의(human exceptionalism)라는 개념이 있다. 감염병의 창궐로 역사가 바뀌고 국가가 몰락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감염병 때문에 인류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다. 그러나 이제 페스트, 스페인독감, 메르스, 코로나로 이어지고 있는 이 감염병들을 인류는 언제나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문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왠지 알 수 없는 믿음이 자꾸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오늘은 살짝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오늘은 살짝 점검을 하지 않고 그냥 사용해도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이걸 우리는 보통 ‘안전불감증’이라고 부른다. 안전에 대해 감수성이 낮아져 있다는 표현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열서넛의 감수성이 이제는 되살려지지 않는다고 한탄을 하고 세상 만사에 무감해지는 것을 당연한 듯 여기며 산다. 그리고 이런 모든 변화를 ‘나이탓’이라고 떠밀며 나의 무감해진 생활에 면죄부를 준다.

그러나 안전만은, 건강만은 이렇게 무감해지도록 나를 내버려두면 안된다. 굳이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는 옛 성인의 말을 되새기지 않아도, 당장 감기 몸살만 걸려도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발가락 끝만 다쳐도 세상사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얼마 전 퇴근 중에 자동차 계기판에서 엔진오일 표시등이 한번 ‘반짝!’ 하더니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나는 고향에서 자동차 수리점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어떻게 해야 해?’라고 전화를 했다. 친구는 다음날 지방출장이 예정된 나에게 출장 전에 꼭 엔진오일을 확인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나는 이 당부를 무시하고 지방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중에는 오일 표시등이 다시 켜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또 흐른 후 이번엔 오일 표시등이 약 5초간이나 켜지는 것을 발견했다. ‘아차!’ 하는 마음으로 급하게 주변의 카센터를 방문했더니 이미 엔진오일은 바닥까지 다 긁어 썼고 엔진은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엔진에서는 이제 2000 RPM이 넘으면 구슬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엔진오일은 가득 채우고 1만km만 운행해도 바닥을 드러낸다. 자동차 수리점에서는 엔진을 교체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왠지 예외일 것 같아서, 혹은 너무 사소한 문제라서 무시했던 작은 사인들이 결국은 큰 사건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일으킨다. 

작은 풀꽃들이 피어나는 모습에도, 작게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소소한 가족의 웃음 속에서도 크게 감동하고 크게 웃는 감수성을 유지한 채 일생을 살고 싶다. 그러려면 안전과 관련된 문제에도, 건강과 관련된 문제에도 작은 일에 민감한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사회 곳곳에도, 그리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전국의 도로에서 자동차가 시속 50km를 넘지 않도록 규정이 바뀌면서 속도위반 딱지를 뗀 운전자들의 볼멘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이 규정을 시범 적용한 도시에서는 사고가 많이 줄었다는 결과를 마주하고는 이런 볼멘 소리를 할 수 없다. 현정부 들어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3대 사망사고(교통사고, 산재사고, 자살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정책이 교통사고나 자살사고에서는 일정정도 성과가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산재사망은 그리 큰 성과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 우리 마음 속에 ‘불감’, ‘예외주의’가 자리잡고 있음이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 모두 감수성을 다시 끌어올려 더 안전하고, 더 건강한 삶을 시작하는 첫날로 삼기를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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