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기 안전신문 특집국장

만성적인 코로나19시대에 성선설이 대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요즈음 회자되는 말 중에 코로나19시대에 대해 “테스형도 몰랐다”면서 인간이 무지하다고 비난하는 얘기가 부쩍 늘었다. 인간의 본바탕인 인성조차 현대문명의 치명적인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안전한 생활이 산산조각 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낮은 곳의 인성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그 말의 진의는 “누구든지 선을 알기만 하면, 선을 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고민 고민 끝에 성인(聖人)의 교훈을 찾아 나섰는데 그 사람은 천 년 전의 공자, 예수, 석가가 아니라 그것은 바로 현재를 직시하고 있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면서 자신의 인성을 깨닫고 행동하는 길 뿐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소크라테스와 맹자가 주장하는 성선설은 낮은 곳의 안전을 바탕으로 한 평화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모르고 악을 행하는 자보다, 알고서 악을 행하는 자가 더 많기 때문이다." 라고 의혹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 치졸한 욕망보다는 성선을 가르쳐 주고 그 성선의 실천을 스스로 훈련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양의 맹자도 이와 비슷하다. 다만 성선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한다는 점에서 그 장점이 있다. [성선(性善)→견선(見善)→종선(從善)→명선(明善)]의 명명덕의 길과 [택선(擇善)→언선(言善)→행선(行善)→지선(至善)]의 신민(新民)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인성교육을 통한 안전한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인성교육의 근본이란 자신의 부모, 형제자매, 이웃에 대한 사랑을 먼저 베풀자는 것이다. 또한 “나”라고 하는 완고한 틀을 극복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상호간에 “한 부모 밑의 형제” 라고 하는 열린 마음으로 본질적 관계성을 유지하는가가 관건이다. 인륜으로서 효제충신(孝弟忠信)의 한줄기 길로써 인간에 대한 친친(親親)한 사랑을 사회전반에 확충시켜 만물에까지 이르게 하는 길이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안전한 나라는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상징적 대상인 장발장을 떠올려 보자. 배고파 길가에 놓인 빵을 훔쳐 먹은 장발장, 그 장발장을 보고 당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형벌을 가할 것인가? 아니면 그 어떤 기본수요 지원책을 만들 것인가? 그것이 핵심문제다. 죄(罪)는 미워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물망으로 가두는 게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장발장을 극빈자라고 해서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 도둑이라는 행위를 악으로 알고 이를 행한 잘못이 있다면 처벌을 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도둑질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거나 ▲생활이 곤궁하기에 어쩔 수 없다거나 ▲상대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거나 ▲상대편에 대한 원한이 있다거나… 등등 상세히 따져 봐야 할 것이 있다.

우주 속에 같이 살아가야 하는 미약한 존재들에 대하여, 귀뚜라미의 정겨운 가을 부르는 소리라던가, 한 송이 달래 꽃에 달려드는 꽃과 나비와 같이, 전체적인 조망과 체계적인 해명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일상생활은 낮은 곳의 안전을 바탕으로 하는 안전한 나라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철학적인 평화사상이다. Maslow의 욕구단계론에 따르면 인간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안전을 추구한다고 했다.

그러하기에 낮은 곳의 안전을 바탕으로 한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장발장을 생각하면서 우리 인간의 기본적인 수요를 왜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지 그 사명감을 바르게 알고 실천해야 한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직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각자 본성이 요구하는 대로 “스스로 설 수 있는 길”을 깨닫고 실천하면 된다. 이러한 대장부의 길에 대해 맹자는 “부귀영화도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빈천도 그 마음을 흔들지 못하며, 위압과 폭력도 그 뜻을 꺾지 못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그 마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안전욕구를 바탕으로 하는 평화사상을 말한다. 지금은 코로나19시대다. 질병 치료방안으로 조선 시대의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이 떠오른다. 그 책을 만드는 요령을 선조(宣祖) 임금께서 제시했다고 한다. ▲사람의 질병이 몸과 마음의 조리를 잘못해 생기므로 수양(修養)을 우선(于先)으로 하고, 약물치료를 다음으로 할 것. ▲처방이 너무 많고 번잡하므로 요점을 추려서 쓸 것. ▲국산 약재 이름을 적어 백성들이 쉽게 알도록 할 것 등이었다. 지금도 이러한 요령에 따라 대처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국산 백신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낮은 곳의 안전을 먼저 추구해야 할 것이다.

조용한 바닷가에 가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라. 오직 인간만이 수평선으로 나눠진 하늘과 땅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안전한 국가, 세계평화를 주창하는 유일한 길을 가고자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거추장스런 아집을 꺾는 것) (세상 모두는 한 부모 밑의 형제인 것)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인간은 안전을 기본욕구에 두고 우리의 전통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성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인간다운 생활이라는 국민적 여망을 담아 인간다운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우주 건설을 위한 안전문화의 아주 큰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러한 일은 책이나 명상을 통해 아니면 일을 통해 반드시 이뤄지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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