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충식 (사)한국산업보건학회장/서울대학교 교수

산업재해는 환경문제와 더불어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인지·원인 규명·차후 대책을 수립하는 사후적 성격이 강하다.

예방을 아무리 강조해도 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작동하기 힘들다.

이는 중국의 전설적 명의인 화타의 일화와 유사하다.

화타는 병자를 기막히게 고쳐주는 의사였지만 화타의 형들은 발병 전에 조절하여 병에 걸리지 않게 하던지, 병의 조짐이 보이면 일찍 조절해 큰 병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였다.

사람들은 화타를 기억하지만, 형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아팠던 환자는 고쳐준 의사에게 고마움을 극으로 표현하지만 미리 예방해준 의사에게는 고마움을 못 느낀다.

산업 안전보건 문제도 마찬가지로 큰 사건이 터지면 야단법석이지만 예방은 그저 돈 먹는 하마쯤으로 간주한다.

사업장에서 산업재해를 보는 시각도 같다. 미리 산업재해를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는 단순한 소모비용이라 간주하고, 사고가 나서야 사후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최대 과제로 여기고 거기서 끝난다.

더구나 경제적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업에서 예방 투자를 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경제적 수준이 낮을 때는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이 그런 측면에서 과거에는 유효했다. 우리나라 전 사업장(실제는 규모에 따른 차이가 있었지만)에 포괄적인 법의 시행은 효과성 여부를 떠나 정부 개입의 근거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면서 단순히 법의 획일적 적용(예, 건강진단, 작업환경측정)은 효과보다는 관습적인 되풀이가 되면서 그 효과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 산업위생분야에서도 유해인자의 관리 방법이 과거의 전통적 방법 이외에 새로운 것이 도입되고 있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 규제보다는 사회적 의식 성숙이 촉진하는 측면이 강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산업보건의 역사를 보더라도 각종 안전사고, 직업병이 사회문제화되었을 때야 법이나 정책적 변화가 수반되었다. 김용균 씨 사망사고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성숙한 사회에서는 법의 강화, 획일적 적용이 반드시 효과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성숙한 사회로 진입하고 있어 법의 강화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또한 경제 수준이 높아졌지만 영세 사업장은 여전히 안전보건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일년에도 수없이 세워졌다 없어지는 사업장에서 어떻게 안전보건을 담보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거시적 측면에서 몇 가지 전략적으로 차별화된 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첫째, 영세 기업에는 각종 안전보건 지원책이 필요하고, 대기업은 규제를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고용 형태를 고려한 정책 집행이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기본적으로 고정된 사업장 중심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전체 근로자의 35%를 넘고 있으며 여성 근로자의 비정규직 고용은 45% 수준이다. 따라서 사업장 베이스 중심의 안전보건 정책의 적용이 어럽다.

셋째, 노동자와 NGO의 참여를 높이는 구조가 필요하다. 학술 연구를 보면 노조 조직률이 높을수록 안전보건수준이 높고 다양한 형태로 NGO의 활동이 강화될수록 법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인식되고, 꺼내져서 사회적 해결의 틀을 제공한다. 후진사회일수록 노조나 NGO의 활동을 억압하거나 폄훼하고 선진국은 건전한 활동을 하여 상생의 길을 모색한다. 현재 우리는 그 과도기에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노조·NGO의 활동이 활발할 때 많은 안전보건 문제가 예방적 차원으로 투자될 것이다.

넷째, 외국인 근로자의 안전보건에 크게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우리 노동자들이 하와이로, 독일로, 중동으로 파견 가서 달러를 벌어왔다. 현재는 거꾸로 우리나라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100만명이 넘는다. 이들의 산업재해율은 한국 노동자보다 훨씬 높다. 이들 외국인 근로자들은 삶의 전반에 대해 불평등을 겪고 있지만, 특히 사업장에서 심하다. 사업장에 가보면 외국인 근로자가 가장 열악한 공정에서 일하고 있다.

다섯째, 첨단산업의 산업보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LCD, IT분야 등에 과감한 투자를 한 기업주와 기업들의 공로가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80년대 말 이쪽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한 기업주들의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첨단산업이 안전보건의 사각지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첨단산업은 기존에 알지 못하는 위험이 내재하고 있다. 가보지 않은 길엔 늘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최근에 반도체, LCD 등 관련 국내 대기업에서 안전보건 분야에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하고 있다고 다행이지만 기술개발이 지속되는 한 새로운 위험도 지속적 관리를 해야 한다.

여섯째,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앞서 얘기한 예방보다는 치료에, 보이지 않는 직업병보다는 상해사고에 더 관심을 두게 된다. 인체를 봐도 중요한 장기(뇌, 심장, 혈관, 폐)는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피부를 베면 바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만 장기가 손상 나면 치명적이거니와 치료도 어렵다.

마지막으로 사업장의 안전보건을 잘하려는 기본 마음가짐(철학)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경제성장기에 있다면 섣부른 이야기이지만 이제 논의해도 좋은 만큼 우리나라가 복지사회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장의 위험요인을 줄이는 정책의 근간을 세울 때의 방법으로 첫째, MAC(Maximum Achievable Control), 즉, 위험을 줄이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관리 방법으로 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든 위험요인을 제거하려는 접근방법이 있다. 둘째, MFAC (Maximum Financially(feasibly) Achievable Control) 즉, 경제적으로 가능한 정도에서 위험노출을 최소화하려는 방법이다. 셋째, RAC(Reasonably Achievable Control) 즉, 합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위험요인을 관리하는 단계이다. 법적인 규제나 사고의 발생 등 관리의 가시적 필요성이 합리적으로 제시될 때만 관리하는 방법이다. 세 번째만 잘 지켜도 훌륭한 것이지만 성숙한 사회가 되면서 RAC->FMAC->MAC를 고려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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