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코로나19로 사업장 가동률이 대폭 낮아졌지만 산재사망은 증가하고 있다.

대형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기업은 언론을 향해 허리 굽혀 사죄하고 경찰과 노동부는 구속과 기소를 밝히고 정부는 수십쪽짜리 대책을 발표하고 정치권은 입법을 약속한다.

그러나 언론의 관심이 사라지면 대책은 실종되고 기업은 불기소와 무혐의로 풀려나고 각종 법안은 폐기돼 왔다.

2020년 사회적 참사 특조위의 조사에서 시민들은 ‘기업의 소유주, 최고 경영자 징역 등 형사처벌이 재발방지에 도움이 된다’ 80.5%, ‘징벌적 손해배상이 재발방지에 도움이 된다’ 83.6%라는 압도적 찬성을 했다.

K방역으로 국제적 인정을 받고 있는 한국에서 매년 2400명의 산재사망과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왜 반복돼야 하는가라는 사회적 공분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그 분노는 240여개 노동·시민사회단체, 피해자 모임, 정당이 참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지난달 26일부터 10만 국민 직접 입법동의청원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대적 과제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즉각적인 제정이 시급하다.

첫째 재래형 사고의 반복, 90% 사업장의 법 위반, 처벌 강화 없는 법 제도 개선대책은 무용지물이다.

산재사망 감소대책은 한두개로는 될 수 없고 노동자 참여 확대를 비롯한 각종 예방대책이 지속돼야 한다. 정부 감독도 그 양과 질 모두가 강화돼야 한다.

최근 몇년새 산업안전감독관 정원은 340여명에서 680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고 각종 법 개정이 있었음에도 현장은 왜 달라지지 않는가. 법이 있어도 사업장 90%가 위반하고 감독을 나와 적발해도, 사람이 죽어나가도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여러 대책과 법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되게 하는 산재사망 감소대책의 기본이자 우선 과제다.

둘째 누구를 어떻게 처벌하느냐가 중요하다. 핵심은 ‘꼬리자르기식 처벌’이 아니라 기업의 최고책임자, 기업법인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야 실질적인 재발방지대책으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판결 분석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재범률은 97%로 형법의 50%보다 훨씬 높고 징역형은 2%로 2017년에는 단 1건의 징역형도 없었으며 평균 벌금은 450만원 내외다.

또 처벌받은 대상의 직책 1위는 35%에 달하는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였다. 그리고 안전담당자, 사원, 하청업체, 노동자, 운전기사 등 말단관리자와 노동자가 처벌받았다.

산재예방은 사업장 내의 예방시스템의 문제이자 조직문화의 문제다.

공기단축과 무리한 공법 변경을 요구한 발주처, 위험작업은 외주화로 돌리고 저가낙찰에 하청 노동자 안전은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원청, 기업과 결탁해서 부실한 인허가, 형식적인 안전점검을 남발하는 공무원 책임자가 강하게 처벌받아야 재발방지로 이어진다.

셋째 한국의 산업재해 실태와 산업안전보건법에 기초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이 시급하다.

경영자단체와 보수 전문가 들은 영국의 기업살인법 적용사례를 직접 단순비교하면서 중소영세 사업장만 처벌대상이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중소영세 사업장은 대부분이 하청업체다.

한국은 제대로 된 원·하청 산재통계조차 없지만 사고사망의 절반이 넘는 건설업은 90%, 건설업을 제외한 산재사망의 40% 이상이 하청노동자다. 사업체 규모별 비교만으로는 현실을 반영할 수 없다.

이에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금지, 도급승인, 원청과 발주처의 안전책임 등이 규정돼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한국 산재사망의 특성,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정에 근거해 실질적인 책임자 처벌을 통해 구조적인 재발방지대책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법이다.

또 오로지 경영 최고책임자에게 좌지우지되는 기업문화, 재벌 대기업은 코웃음치는 과징금 상향 등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는 산재사망에 대한 양형기준 개선을 추진하면서 “산재사망은 과실이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것이 영국, 캐나다, 호주에서 제정된 기업살인법의 원칙과 정신이기도 하다.

‘산재는 기업이 충분히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예방해야 하는 것이며 이를 위반해 발생한 산재사망은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공감되고 확인된 것이다.

2400명의 산재사망, 시민의 반복적 재난참사를 즉각 중단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인식이며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것이 법 제정이다.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기업이 백안시되거나 기업간 경쟁력에서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 악순환의 굴레를 끊어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21대 국회와 정부는 즉시 화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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