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틈 없는 새벽 배송·야간작업 
 고객만족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세상
 기업은 소비자 편의만 앞세우지 말고
 투입되는 노동자 안전도 함께 고민해야”

자기 전 주문하면 눈뜨기 전 문앞까지 물건을 갖다 주는 새벽 배송이 인기다. 어제 주문한 책이 오늘 아침에 ‘쓱’ 오는 A사의 쓱 배송 굿모닝, B사의 로켓 프레시 등 대형 유통기업들이 줄줄이 새벽 배송에 나서고 있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빠른 배송에 만족감을 표하지만 누군가의 밤과 휴식은 더 짧아졌다. 업계가 새벽이 없는 삶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입을 위해 자발적으로 새벽 배송에 뛰어드는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희생하는 부분은 수면과 휴식일 수밖에 없다.

안전하고 깨끗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밤새 뜬눈으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새벽,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높게 쌓인 쓰레기를 수거차 안에 담기 위해 발로 밟곤 한다.

그러나 쓰레기 안에는 분리수거가 제대로 돼있지 않아 깨진 유리병 등이 환경미화원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또 이들은 차에 타고 내리는 시간도 아까워 위험한 걸 알면서도 차 뒤에 매달려가기 일쑤다.

2017년 8월 3일 게임업계의 장시간 노동관행인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를 앞두고 야근과 밤샘을 반복하는 기간)로 숨진 20대 게임 개발자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회는 “발병 전 12주간 불규칙한 야간작업과 초과근무가 지속됐고 특히 발병 4주전 일주일간 근무시간은 78시간, 발병 7주전 일주일간 근무시간은 89시간으로 확인됐다”며 “20대의 젊은 나이에 건강검진 내역상 특별한 기저질환도 확인할 수 없는 점을 감안하면 고인의 업무와 사망과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야간작업은 건강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07년 지속적인 야간 작업이 유방암과 같은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야간작업을 2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납, 다이옥신, 자외선과 같은 등급이다. 야간작업이 그만큼 심각한 건강상 문제를 초래한다는 의미다.

노동계에서도 이같은 지적은 이미 오래전 제기됐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연합노동조합연맹은 지난해 7월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을 맞아 ‘환경미화원 건강권 확보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세미나’를 통해 야간작업의 문제를 지적했다.

세미나 지정토론자로 나선 장경술 인천지역 환경분과협의회 의장은 산재에 노출된 환경미화원의 실태를 전달하며 야간작업이 줄어 들면 산재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장경술 의장은 “경기도 의왕시가 2011년 환경미화원 모두를 주간작업으로 전환하자 안전사고율이 43%나 감소했다는 보고 내용이 나왔다”며 “특히 야간·새벽작업으로 어두운 작업환경에서 베임·찔림 및 기타 사고 등이 발생하는 것은 생체리듬이 깨져 피로 누적으로 위험대처능력이 저하돼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간작업의 부작용을 밝힌 연구 결과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정혜선 가톨릭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와 엄미정 연구원은 야간작업을 하는 여성이 비만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보건복지부 국민건강영양조사(2010~2016년)에 참여한 여성근로자 2090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야간이나 교대근무를 하는 여성의 비만 가능성이 주간이나 저녁근무를 하는 여성보다 1.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야간근로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유발해 비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고 야간근로를 하면 운동 등 체중조절을 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비만을 관리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은숙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 회장은 “야간작업은 작업 중 사고의 주요인이며 피로, 수면·위장관 장애, 뇌 심혈관질환, 암 등의 질병을 일으키는 위험인자”라고 표현했다.

최 회장은 이를 해결키 위한 방법으로 “노동자의 수면 보장을 기본적인 건강권과 근로조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조치하는 산업안전보건정책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쉴 틈 없는 새벽 배송과 야간작업이 고객만족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있다”며 “업체들은 소비자 편의만 앞세우지 말고 이를 위해 투입되는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8년 12월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스물네살의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 그도 야간작업 중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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