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교육원 교수

“코로나19로 생긴 생활습관인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 실천만으로도
 산업현장 직업병·질식재해 막을 수 있어
 
 사회적 거리 두기와 동일한 개념으로
 위험설비·기계에 안전조치를 하고
 접근을 차단한다면 부상자는 물론이고
 산업재해 없는 세상 만들 수 있어”

언젠가부터 우리들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삼천리 금수강산을 초토화시키고 있으니….

1만명에 육박하는 확진자에 100여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어 국민들은 두려움에 아무곳에도 갈 수 없이 격리가 되고 정상적인 생활도 불가능하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고 경제는 거의 마비 지경에 이르렀다. 학교가 문을 닫고 코호트 격리라는 단어도 알게 됐다. 방송은 코로나19 확진자나 사망자 정보로 뒤덮고 있으니 우리 생활에 바이러스가 무서운 존재로 다가왔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손세정제가 비치되고 모두들 바르고 문질렀다. 손씻기를 철저히 하도록 하는 홍보물이 나돌고 생일 축하 노래를 두번 부르면서 손을 꼼꼼하게 씻어야 예방의 지름길이라고 했으니 아이들까지 그대로 따라 하는 습관으로 우리 생활에 정착됐다.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예방수칙을 발표하자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물량이 부족해 아우성이다.

어떤 마스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일회용으로만 사용해야 하는지, 재사용은 불가능한 것인지, 빨아서 사용하면 안되는지, 면마스크는 어떤지를 확인하는 등 마스크에 대한 인식이 최고조에 달했다.

일관성 없는 정부의 마스크 공급 정책에 불만이 높았고 기상천외한 공급 방식이 도입됐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어디를 가는 행위가 어색해지는 분위기가 만들어 졌다. 코로나19에 근접해서 일하는 의료인들은 숨쉬기조차 힘든 마스크에 방호복까지 착용하고 위험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코로나19를 예방키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이 또 하나의 예방수칙으로 인식돼 모임이 취소되고 회식은 물론이고 결혼식도 미뤄졌다. 정말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됐다.

코로나19에 관한 뉴스를 매일 접하면서 필자는 산업재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의 산업현장에서는 매년 부상자가 9만여명, 사망자는 2000여명, 질병자가 1만여명이 발생해 OECD 회원국 가운데 사망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이러한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에게 손씻기를 강조했지만 잘 이뤄지지 않았다. 금방 문제가 발생하기 보다는 꾸준히 야금야금 찾아오는 직업병에 대한 인식도 낮았다. 사업주도 근로자도 감독기관에서도 손씻기를 비롯한 위생관리를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전 국민의 손씻기 습관을 정착시켰다. 지금 우리가 사회적으로 합의돼 실행되는 손씻기를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연결시켜야 한다.

분진이나 유해화학물질이 난무하는 사업장에서 마스크 착용을 독려했지만 그 이행 정도가 지극히 낮았다. 갑갑해서 착용하기 힘들다는 핑계도 있었고 미처 공급을 하지 못하는 사업장도 있었고 며칠을 계속해 착용하는 사례도 허다했다.

만일 지금처럼 마스크 착용에 대한 인식과 습관이 생활화됐다면 산업재해는 엄청나게 줄었을 것이다.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거나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 적절한 마스크와 방호복을 착용했다면 직업병도, 화학물질 중독도, 질식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외치고 이를 실천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산업현장에서는 위험설비와 거리 두기, 안전 조치를 취해 위험과의 거리 두기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김용균 씨가 회전하는 컨베이어에 말려 생명을 잃고 김용균법까지 만들어졌으나 유사한 사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위험설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설비가 설치되거나 위험기계·기구에서 안전하게 작업하는 방법이 도입되지 않고 있으니 산업재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만일 코로나19에 대비해 펼치는 정책과 국민들의 의식 개혁과 실행이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조치로 진작 이뤄졌다면 오늘의 불행한 산업재해는 현저히 줄었을 텐데….

왜 이런 정책과 근로자들의 의식개혁과 실행이 이뤄지지 못했을까. 누구의 잘못일까. 왜 근로현장에서 손씻기가 생활화되지 못했고 유해물질이 발생하는 곳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례가 빈발했는가. 왜 위험설비나 기계·기구로부터 근로자를 격리시키는 안전조치가 공염불에 불과했을까.

우리 모두가 반성하고 심기일전해야 한다. 구태의연한 정책이나 방침이 이어지지 못하도록 획기적인 규정이나 방침이 마련되고 적용돼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풍속이나 습관이 산업현장에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이 산업재해 없는 세상을 만들 절호의 기회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는가?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으로 직업병을 막을 수 있고 질식재해도 없앨 수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동일한 개념으로 위험설비나 위험기계·기구에 안전조치를 하고 접근을 차단한다면 부상자는 물론이고 사망자를 없앨 수 있다.

코로나19가 불행이라면 그 교훈은 소중한 자산이다. 이 소중한 자산을 외면하거나 “코로나19는 코로나19고 산업재해는 다르다”고 애써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걱정이다.

코로나19 없는 세상, 산업재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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