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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기고승인 2019.11.27 15:34 | 수정 2019.11.27 15:34
[기고-정혜선]살아남은 자의 눈물정혜선 가톨릭대 보건대학원 교수·직업건강협회 회장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한 세월호 사건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이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 지고 어른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언론으로 사건을 접한 사람의 마음도 이러한데 그 현장에서 같이 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실제로 당시 세월호에 함께 승선했다 구조된 단원고 교감선생님은 살아남은 아픔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해 그 안타까움을 더욱 크게 했다.

2017년 5월 경남 거제시 소재 삼성중공업에서 타워크레인 전복으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 슬픔을 감출 수가 없지만 같은 시각 그 옆에서 근무하다가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의 충격도 이루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동료를 지켜주지 못한 자괴감과 언제 또 자신이 똑같은 사건으로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업무를 지속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고 고통이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군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사건을 보면서 어머님의 울부짖는 모습은 아직도 우리의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내 자식을 잃은 것만 같은 슬픔으로 보는 이조차 가슴 처절하게 만든다.

직장에서 일하다 발생한 산업재해로 끝내 퇴근하지 못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매년 10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이 산재보상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어찌 그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특히 함께 일했던 동료, 직장상사, 가족들의 슬픔은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지 못하고 가슴 속에 응어리로 남아 평생토록 한을 맺히게 한다. 더 이상 직장생활도, 사회생활도, 가정생활도 할 수 없는 허탈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정신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격렬한 충격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괴롭거나 끔찍한 순간이 지속적으로 떠올라 정신건강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과 공황장애는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

특히 근로자들이 겪는 산재 트라우마는 사고가 발생한 그 장소에서 작업이 계속 이뤄지기 때문에 그 기억이 오래 남는 특성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사건이 나한테도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일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들고 출근을 해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할 수 없는 무기력증을 가져와 엄청난 생산성 손실을 초래한다.

도의적으로도 동료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해 분노를 넘어 이런 상황을 발생시킨 업무환경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울분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산재 트라우마는 신속히 관리돼야 하고 반드시 해결돼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산재 트라우마가 모든 근로자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 충격이 매우 큰 사건을 경험하거나 그 빈도가 자주 발생하는 경우 위험성이 더 크다.

산재 트라우마가 발생한 경우 신속하게 대응해 관리한다면 이로 인한 후유증을 줄일 수 있고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2차적인 재해가 발생해 더 큰 문제를 발생한다.

승객의 사망을 목격한 기관사가 트라우마로 공황장애를 호소하다가 자살한 사례가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트라우마의 예방과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실감나게 한다. 

2017년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를 목격한 많은 근로자들이 아직도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 161명에 이르는 근로자들이 위험군으로 분류됐고 7명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산재 인정을 받았지만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건강문제를 호소하는 근로자들이 여전히 많다.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서는 경남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해 트라우마 관리를 했고 대구근로자건강센터를 트라우마센터로 지정해 전국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트라우마에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전국에서 발생하는 산재 사망 트라우마를 1개 센터가 관리하는 것은 너무나 제한점이 많다.

필자가 센터장을 맡고 있는 부천근로자건강센터에서도 부천·김포지역에서 산재사고 발생시 심리상담사와 산업전문간호사가 사업장을 방문해 트라우마 관리를 하고 있다.

최근에도 김포지역 사업장에 대한 트라우마 관리를 시행해 산재 인정을 받게 했고 근로자에 대한 심리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상담을 시행해 신속하게 작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하지만 트라우마 관리가 쉬운 일은 아니다.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는 근로자에게 낯선 이방인이 접근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상담자에 대한 신뢰가 확보되지 않으면 마음을 열고 어려움을 호소토록 하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다.

평소에 지역사회에서 꾸준한 활동을 하면서 노사와 긴밀한 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한 트라우마 관리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사업장의 보건관리자도 늘 근로자 곁에서 근로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관리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트라우마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 가능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트라우마 관리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사고성 사망자를 감소시키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산재 사망을 목격하고 그로 인한 충격에 빠져 있는 근로자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동일한 재해와 반복적인 사고가 연이어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센터에 대한 지정이 확대되고 보건관리자가 정신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도록 해 살아남은 자의 눈물을 닦아 주고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근로자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 마음과 안정된 상태로 일을 할 수 있을 때 사고사망자도 감소되고 안전한 대한민국이 건설될 수 있을 것이다.

안전신문  webmaster@safet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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