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희 장평/보라매초등학교 한문강사

‘어른’의 사전적 의미는 다 자란 사람, 즉 다 자라서 자기를 안전하게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지위나 나이, 항렬이 자기보다 높은 사람, 남의 아버지를 조금 높여 이르는 말 등 주로 스무살 이상의 사람을 통틀어 이른다.

또 ‘꼰대’라는 말은 서울에서 걸인 등 도시 하층민들이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은어로 쓰기 시작했는데 1960~1980년대까지는 주로 남학생들이 또래집단 내에서 그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아버지나 교사 등 남자어른을 가리키는 은어로 사용되다가 이들이 사회로 진출하면서 대중매체를 통해 속어로 확산됐다.

근래에는 자기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낡은 사고방식을 강요하거나 시대착오적 설교를 늘어놓는 것을 말한다.

꼰대들에게 시비의 기준은 서열이며 꼰대가 서열에서 우위에 있고 듣는 사람이 열위(劣位)에 있으므로 열위의 사람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서열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사이에 예의를 지킨다면 꼰대가 아닌 것이다.

안전한 역사 속의 어른

공자가 2500여년이 지난 지금 시대에 따라 대접의 차이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어른, 성인으로 대접받는 것은 훌륭했던 제자들 덕분은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한다.  물론 야합해 낳은 자식 등의 소리를 듣는 환경에서 15세 어린 나이에 학문에 뜻을 두고 오직 도를 실천하기 위해 외길을 걸어오셨기에 가능했지만 그 이면에는 너무나 탁월한 제자들이 있었다.

첫째 자공은 ‘叔孫武叔語大夫於朝曰(숙손무숙어대부어조왈) 子貢賢於仲尼(자공현어중니니). 者服景伯以告子貢(자복경백이고자공). 子貢曰(자공왈) 譬之宮牆(비지궁장), 賜之牆也及肩(사지장야급견), 窺見室家之好(규견실가지호). 夫子之牆數仞  (부자지장수인) 不得其門而入(부득기문이입), 不見宗廟之美(불견종묘지미), 百官之富(백관지부). 得其門者或寡矣(득기문화혹과의). 夫子之云(부자지운), 不亦宜乎(불역의호)!’

숙손무숙이 조정에서 대부들에게 말하길 “자공이 공자보다 뛰어나다.” 자복경백이 자공에게 전하자 자공이 왈 “대궐의 담장에 비유하면 나(賜)의 담장은 어깨쯤 되기에 그 집이 좋은지 엿볼 수 있다. 스승님의 담장은 몇길의 높이여서 문을 찾아서 들어가지 않으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궁(百官)의 부성(富盛)을 볼 수 없다. 그 문을 찾아서 들어가 본 사람이 적다는 것을 숙손무숙의 말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당시 자공의 명성은 대단해서 그가 오히려 공자보다 현명하다는 평이 자자했다.

노나라 대부인 손무(孫武)는 조정에서 공개적으로 자공이 공자보다 현명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자공은 “비유해 말하자면 내 학문 수준은 낮은 담장으로 둘러친 집이어서 누구든 볼 수 있지만 스승님의 학문수준은 몇길이 넘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친 종묘와 같아서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간다고 해도 볼 수가 없는데 그 문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도 극히 적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확하지 않은 말을 하게 된다”고 하며 공자 사후 6년을 시묘(侍墓)살이를 해 세상 사람들은 자공 정도의 인물이 6년을 시묘살이를 한다면 그 선생은? 그리고 자공은 자신이 얻은 정치적 명예와 부를 바탕으로 스승의 사상을 천하에 전파했다.

공자는 자공의 이러한 경제적ㆍ정치적 지원을 통해 세상에 그의 뜻을 펼칠 수 있었다.

둘째는 자로이다. 긴 주유천하여정(周遊天下旅程)에서 공자는 받아주는 군주가 없자 반역자의 부름에 응하려 했을 때 자로는 강하게 비판하며 만류한다.

진정한 역사 속의 성인인 공자는 제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받아들인다.

2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추앙을 받는 공자가 그때 반역자와 손을 잡았다면 과연 지금까지 어른으로 칭송받을 수 있었을까?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

귀곡천계(貴鵠賤鷄)라고 이 시대 우리들의 가까이에 안전한 어른이 있지만 짧은 잣대와 편견이 시야와 판단력을 흐리게 해 공자시대에 공자를 몰라주듯이 진정한 어른을 몰라보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근심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뛰어난 영재 중의 영재를 만나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의 환희도 맛보지만 엉뚱한 아이를 만나서 내 능력의 한계에 부딪힐 때면 생각한다.

‘내 손자들이 이 아이 같지 않다고 어떻게 장담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마음으로 이 아이들의 안전에 최선을 다한다.

내가 없는 먼훗날 이 아이가 성장했을 때 그때 그 선생님께 들은 그 한마디가 내 인생에 좌우명이 됐다고 회상할 수만 있다면 내 한 세상은 보람되게 살다 간 것이라 생각하며 난 아직도 새 학기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때면 이 아이의 영혼은 또 얼마나 자유로울까 가슴이 설렌다.

우리는 늘 생각해야 한다.

나는 어른인가? 꼰대인가를.

강선희 koksh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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