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석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자살예방센터장

최근 창원에서는 어린이집 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건복지부 감사를 앞둔 시점에서의 심적 압박감이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또 얼마 전에는 맘카페를 통해 아동학대 가해자로 몰린 결혼을 3일 앞둔 유치원 교사가 역시 생을 마감했다.

하루에 34명의 소중한 생명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34명의 20배인 700명 정도가 매일 자살을 시도하고 있고 2017년 한햇동안 1만246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저출산 국가로 전락한 마당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을 마감하는 심각성을 인식해 문재인 대통령은 올 신년 기자회견에서 자살예방·교통안전·산업안전을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로 선정해 임기동안 사망자를 50% 줄이겠다는 것이다.

다행히 지난 9월 기준 교통사고 사망자는 전년 대비 8% 이상 감소했다. 하지만 자살의 경우 지난해말 유명 연예인의 자살을 계기로 청소년들의 추종·모방 자살 우려가 커지고 있고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통한 자해 동영상에 쉽게 노출돼 있으며 대중가요나 드라마에도 자살이나 자해란 단어와 장면이 자주 언급된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 12월부터 2017년 3월까지 30명이던 청소년 자살자수가 2017년 12월부터 올 3월까지 45명으로 급증했다. 특히 7월 유명 정치인의 자살 당시 장소, 방법, 동기 등이 여과없이 보도되면서 추종 및 모방자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경제난으로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살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부는 자살을 줄이기 위해 올해 보건복지부에 자살예방정책과를 신설했고 국무조정실에도 국민생명지키기 추진단이 결성돼 정부의 자살예방정책을 조정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자살예방을 위해 재계, 노동계, 의료계, 종교계, 언론계와 시민단체 등 40개 단체로 구성된 ‘생명존중 민관협의회’를 결성해 민과 관이 힘을 합쳐 자살을 줄이기 위해 적극 노력키로 했다. 하지만 아직 가시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지난 8월 일본의 자살예방대책을 살펴보기 위해 현지에 다녀 왔다. 일본은 2003년 연간 자살자수 3만4000명을 2017년에 2만1302명으로 37.3%나 줄였다. 일본의 경우 자살을 줄이기 위해 자살대책을 위한 컨트롤 타워를 한국의 대통령실에 해당하는 내각부에서 총괄 지휘함은 물론 실제로 자살예방사업을 집행하는 47개 광역자치단체와 1700개 기초자치단체장들의 강력한 의지로 자살을 대폭 낮출 수 있었다.

일본은 지역마다 의사, 변호사, 교사와 전직 공무원, 대기업 간부 출신의 취업 지원 전문가 등 민과 관이 촘촘히 연계된 민관협의회가 구성돼 자살 고위험군 발견·상담·구호 조치를 하고 있다. 특히 병원과 구청간 연계 체계가 구축돼 자살 시도자 병원 이송시 자살예방 전담 공무원이 병원에 파견돼 시도자와 상담 및 적절한 구호 조치를 해주고 있으며 자살 위험이 매우 높은 유가족에 대한 지원 행정서비스도 이뤄진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자살률을 낮춰가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사정은 어떤가. 서울시와 일부 지자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광역 시·도와 227개 기초 지자체(시·군·구)에 자살예방을 전담하는 공무원 조직이 없다.

단체장들의 자살예방 의지도 매우 약하다. 지자체로부터 위탁 경영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정신보건과 함께 자살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데 정신보건업무가 위주다.

자살예방 담당 직원수가 적을뿐 아니라 신분도 보장이 돼 있지 않고 예산도 많이 부족해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자살예방대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지자체들이 자살예방대책을 적극 추진하게 된 것은 NHK TV에서 PD로 일한 경험이 있는 시미즈 야스유키가 대표로 있는 NPO 법인 ‘라이프 링크’가 큰 역할을 했다. 이 단체는 2008년과 2009년 전국 지자체별로 자살예방대책과 실적을 조사해 언론에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각 지자체장들이 자살예방교육에 직접 참여해 강한 의지를 갖고 자살예방대책을 실천해 자살률을 크게 줄였다. 평가를 통한 지자체의 경쟁이 긍정의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자살예방에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유명 연예인이나 사회 저명인사의 자살은 베르테르 효과가 있어 추종·모방자살이 잇따르기 때문에 언론에서 이들에 대한 자살사건 발생시 자살방법, 동기, 장소 등은 보도를 안하는 것이 추종 및 모방자살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2005년 탤런트 이은주, 2007년 정다빈, 2008년 최진실 자살 후 많은 언론들이 자살에 대한 내용을 경쟁적으로 보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따라 생명을 버렸던가. 뒤늦게 보건복지부에서 자살보도 권고기준 5원칙을 발표해 자살방법, 동기, 장소 등은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언론사에 요청했지만 아직도 일부 언론사에서는 사실 보도라는 측면에서 보도를 일삼고 있다.

일반 사망사고는 사고경위 등에 대한 보도를 통해 사고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자살의 경우 이러한 내용이 보도될수록 자살방법, 동기, 장소 등이 알려져 하루 700명의 자살 시도자들에게 성공률(?)을 높여 주기에 최대한 보도를 자제하고 예방에 대한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

이렇게 자살이 이 사회의 가장 큰 재난이기에 안전시민단체인 안실련에서는 자살예방을 위해 국회의원 39명으로 결성된 국회 자살예방포럼의 지원을 받아 일본에서 실시한 바와 같이 내년에는 시범적으로 16개 시·도의 자살예방대책과 실적들을 조사·분석해 언론에 공표할 예정이다.

자살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자살로 내몰리는 사회구조와 환경적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가 앞장서서 대책을 마련함은 물론 지자체장들도 지역 주민의 자살률을 줄이는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또 지역별로 특성에 맞게 민과 관이 함께 예산이 수반된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추진해야만이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자살로 인한 사망자수 50%를 줄이겠다는 약속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양두석 nseok06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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