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사업 통해 20억 미만 현장에 시스템비계 보급 나서

추락재해 감소 ‘소규모현장 동참’이 관건

청주·충주 안전보건협의체(회장 봉진균 대우건설)는 순수 민간단체다. 이 지역 건설현장 안전 및 보건관리자들이 회원인데 정기적으로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도 함께 다지는 자리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 협의체가 안전보건공단의 안전문화 확산 공모사업에 참여키로 했다. 계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 1월 안전보건공단 충북지사로부터 협의체가 지역에 좀 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공모사업 참여를 제안받았습니다. 처음엔 얼떨떨했습니다. 협의체 운영만 해도 정신이 없을 지경인데 공모사업이라니요? 생각해 보겠다고 한 다음 장고에 들어갔죠. 사실 회원들 회비로 운영되는 협의체다 보니 재원 부족으로 생각만 했던 아이템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저와 회원들이 잘 아는 안전보건분야이면서 지역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 생각해 사업 참여를 결정했습니다.”

협의체가 안전문화 확산 공모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저변에는 2016년과 2017년 협의체 자체적으로 추진했던 ‘안전! 해피투게더’ 사업이 한몫했다. ‘안전! 해피투게더’는 대형건설사들이 인근 소규모 건설현장 3~4곳과 자매결연을 맺고 한달에 한두차례 방문해 교육, 점검, 자료와 홍보물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여기서 얻은 자신감이 협의체로 하여금 사업 참여를 결정하도록 만든 셈이다.

“사업신청과 심사를 거쳐 최종 확정이 된 후 덜컥 겁이 나더군요. 과연 우리의 노력과 열정이 지역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소규모 현장은 대기업 현장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날텐데 문전박대 당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노력만으로 그쳐서는 안되고 실적도 뒤따라줘야 하는데 그게 우리 맘처럼 쉬울까?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과 고민은 간혹 독이 될 수 있다. 협의체는 일단 부딪혀 보면서 문제를 하나씩 풀어 나가기로 했다. 지역 추락재해를 절반 가량 줄이기 위해서는 소규모 현장의 참여와 관심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들 현장에 협의체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현장 방문 첫날 다가구다세대 현장을 찾았다. 주변 환경부터 대기업 현장과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열악했다.

“저와 회원들은 지금껏 일하면서 교육장 없는 곳에서 일해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때 깨닫게 되더군요. 교육장은 커녕 제대로 된 이동통로도 없었고 자재와 장비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어 작업자들이 이러 저리 돌아다니며 일하시더군요. 그 흔한 게시물이나 현수막 한장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제가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현장 반응이 궁금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취지를 안내하고 웃으면서 차분히 설명하자 흔쾌히 현장출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물론 끝까지 게이트를 안열어 주는 곳들도 있긴 했지만요.”

보호구 기증 및 정부 지원제도 전파

많은 시간을 뺏을 수 없었기에 지원활동은 빠르게 진행됐다.

먼저 작업자들에게는 안전모 등 깨끗한 보호장구를 기증하고 정리정돈과 안전수칙 준수의 중요성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특히 보호장구 착용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일할 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사례를 들어가며 설득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보호구 착용이면 활동치고 너무 뻔한 게 아니냐고 묻자 봉 회장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대기업 현장과 소규모 현장은 기본 시스템부터가 다릅니다. 우리에겐 익숙한 것들이 그 분들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보호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현장에선 회사가 구입해 지급하지만 소규모 현장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보호구도 작업자들이 알아서 챙겨오는 식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현장에서 저희가 보호구 착용의 중요성을 설명하자 그게 눈치가 보였는지 관리감독자들이 작업자들에게 빨리 안전모부터 쓰고 오라고 하더군요. 잠시 후 작업자들이 안전모를 들고 왔는데 어찌나 지저분하던지 저라도 그걸 쓰고 일하라고 하면 안쓸 정도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는 현장에 기증하는 보호구 수량을 늘렸습니다. 보호구 착용을 유도하려면 깨끗한 보호구를 주면서 권하는 게 순서니까요.”

보호구 가격과 종류, 구입방법 등도 함께 알려드렸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버프, 팔토시, 아이스크림과 음료수, 물수건 등도 제공해 작업자들에게 좀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한다.

관리감독자를 상대로는 어떻게 접근했는지 물었다. 현장소장들님에게는 건설업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집행규정 책자를 만들어 드리고 궁금한 사항들은 현장에서 일문일답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필요한 안전시설물과 보호구는 안전관리비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려드렸는데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소장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밖에 건설현장 추락사고 사례집을 제공해 휴식시간 등에 현장 직원이면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리정돈 상태나 보호구 착용이 불량한 현장도 있었고 생각보다 깨끗하고 보호구 착용이 양호한 현장도 있었습니다. 두 현장의 차이는 작업반장의 마인드가 결정지었다고 봅니다. 잘하는 현장의 반장님은 본인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보호구 착용도 하고 중간 중간 정리정돈도 해가면서 작업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현장은 반장들부터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일하고 있었습니다. 개개인의 의식 문제라기보다는 현장 작업팀의 분위기 차이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작업반장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봅니다.”

일부 작업자들은 알면서도 위험하게 일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유를 듣고 놀랐다고 한다. ‘안전난간대 치고, 정리정돈하고, 안전벨트 메고 올라가면 반장들이 뭘 그것 가지고 유난떤다고 할까봐 알면서도 그냥 일했다.’ 즉 반장 눈치 때문이라는 것이다.

협의체에서 이런 부분들을 지적하고 알려주니 속이 다 시원했다고 말하는 작업자도 있었다고 한다.

“어디든 사람관계가 중요한 것 같더군요. 처음에는 현장 일도 바쁜데 괜한 일을 만들어서 피곤하다고 했던 회원들도 한번 두번 현장을 방문하면서 소규모 건설현장의 재해예방에 지도·조언을 하는 보람을 느끼게 됐습니다. 경험이 부족한 안전관리자들에게는 경험 많은 안전관리자로부터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회원들이 더 많이 얻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건강 중요성 역설… 근로자 생명 구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원룸을 짓는 현장이었는데 저희가 갔을 때는 한창 터파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현장소장님께 골조공사는 어떻게 하실 것인지 묻자 뭘 그런 걸 다 물어보냐며 당연히 강관파이프로 외부에 쌍줄비계를 세워서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보다 안전한 시스템비계를 권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시스템비계의 공사비 일부를 공단에서 지원해주고 있으니 한번 알아보시라고 해 드렸습니다. 그 뒤로 잊고 있다가 얼마 전 그 현장 소장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위험요소도 확 줄여 사고 없이 준공했다며 자기가 잘 모르는 것을 알려줘 정말 고마웠다고요. 다음 현장에 가서도 시스템비계를 꼭 쓰겠다는 말씀도 하시더군요.”

지난 6월 방문한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름철로 접어드는 시기라 건강관리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춰 교육했는데 당시 자리에 계셨던 한분이 현장에서 일하는 중 몸이 안좋아서 병원 방문 후 정밀검사를 받고 재활한 후에 다시 현장에서 일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 캠페인 도중에 들었습니다. 당시 병원에 안가고 휴식만 잠시 취하고 일을 계속했다면 급성심근경색으로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분들이 높은 곳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 떨어지면 개인 지병이 아니라 추락사고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땡볕에 땀흘리며 다녔던 시간들이 헛되지는 않았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공모사업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며 이달에도 청주와 충주에서 추락사고 예방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 캠페인에서는 VR을 활용해 작업자는 물론 충북도민 등 일반인까지 추락재해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봉 회장은 덧붙였다.

협의체 올해 활동 성과

안전보건공단 충북지사에 따르면 올 7월말까지 충북지역 추락사고 사망자수는 모두 6명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명 보다 5명(54%) 줄어든 수치다.

봉진균 협의체 회장은 “처음 수치를 알게 됐을 때 저를 비롯한 회원들 모두 협의체 활동이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면서 “하지만 6명이나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생각에 이런 뿌듯함도 오래 가진 않았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올해도 석달 가까이 남은 만큼 지금 협의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가장 옳은 일이라 보고 추락사고 예방에 힘을 모을 계획이란 각오도 밝혔다.

공모사업 기회가 한번 더 주어진다면 어떤 것들을 해보고 싶은지 묻자 그는 ‘다양한 자료 제공’과 ‘심폐소생술 실습’을 꼽았다.

“대다수 소규모 현장은 게시판이나 교육장 등 대기업 현장이면 볼 수 있는 시설들이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현수막 1장조차 걸려 있지 않는 현장들이 태반이었으니까요. 보호구 착용, 점검과 교육, 정리정돈 등을 강조하는 현수막 1장이라도 걸어주고 왔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여러번 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 가보면 나이 드신 분들이 대부분인데 건설업 특성상 야외에서 장시간 육체노동을 해야 하고 술도 정말 좋아하십니다. 이런 분들께 심폐소생술 시연과 함께 실습을 해드리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대한적십자사 응급처치법강사회 부회장이기도 한 봉 회장은 5년 전부터 주말마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심폐소생술 강의도 해 오고 있다.


‘추락재해예방 일등공신’ 소규모 건설현장 안전시설 지원

소규모 건설현장의 안전 확보를 위해 시스템비계 등 안전시설 설치비용을 지원하는 건설업 클린사업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9월말 현재 지난해 보다 38억원 증액된 238억원의 예산이 모두 소요됐으며 이같은 열기에 부응해 내년에는 3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배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장의 분위기도 긍정적이다. 굳이 비용 지원을 통해 추락방지시설을 설치할 경우 설치하지 않은 현장에 비해 떨어짐 재해가 약 24% 가량 감소한다는 통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원사업의 대표 품목인 시스템비계 설치만으로도 현장의 분위기가 바뀐다는 것은 공사 관계자와 이 사업을 진행하는 안전보건 관계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장에서는 기존에 많이 사용된 강관비계와 비교해 시스템비계의 안전성은 이미 검증된 내용이며 더불어 시스템비계 설치로 바뀌는 깨끗하고 정리정돈된 현장 모습은 관계자들의 안전의식까지 고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사업을 진행하는 안전보건공단의 강력한 의지도 한몫했다. 박두용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산업현장의 사망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건설업 사망재해를 예방해야 하며 특히 추락재해 예방은 주요 포인트”라며 “이를 위한 대책으로 중소건설현장에 시스템비계 도입이 확산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사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전 준비도 철저하게 진행했다. 안전보건공단은 소규모 건설현장 안전시설비용 지원사업의 대상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을 가입하고 보험료를 체납하고 있지 않은 공사금액 20억원 미만 현장으로 자금지원대상 설비는 시스템비계(임차·설치·해체), 안전방망(설치), 사다리형 작업발판(구입) 등으로 한정했다.

또 사업 시작 이전 일선기관 담당자와 시설 공급업체 사업주 등을 대상으로 관련 내용을 안내하는 간담회를 개최했으며 이후 지역본부 및 지사는 물론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에서는 지원에만 치우친 방식의 사업이 아닌가라고 우려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비해 안전보건공단은 지원한도를 같은 현장당 최대 2000만원으로 한정해 운영했다.

또 지원 비율도 공사금액 3억원 미만의 현장의 경우 65%, 10억원 미만 3억원 이상인 경우 60%, 20억원 미만 10억원 미만인 경우는 50%로 차등 적용함으로써 공사금액에 따라 현장에는 자기 부담비율을 높이는 방식을 적용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건설업 클린사업을 통해 안전시설 설치비용 지원을 받은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추락 사고가 줄어든 것으로 확인된다”며 “비용지원 기회가 확대된 만큼 노동자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소규모 건설현장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안전보건공단은 2020년까지 건설현장 비계의 60%를 시스템비계로 전환될 수 있도록 관련 지원사업을 꾸준히 펼쳐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우선 2019년 사업도 올해 이상으로 예산이 확대되며 사업 방식도 올해와 유사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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