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진 안전보건공단 충북지사장

지난해 우리나라 일터에서 다친 근로자는 9만656명, 사고로 인해 사망한 969명을 포함해 1777명의 고귀한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세상을 달리했다. 이 중에는 머나먼 타국인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도 88명이 포함돼 있다. 지난 한해만해도 근로자 1만 명당 0.96명이 사망했다. 10년 전인 2007년 1.72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44% 낮아졌기에 나아진 형편이지만 소중한 목숨과 바꾸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지난 2월 청주시 옥산면에 소재하는 도로 건설공사 현장에서 수로암거 벽체 철근조립을 위해 강관틀비계 작업발판에 올라서서 작업하던 근로자가 바닥으로 떨어져 사망하였다. 사고의 원인으로 안전하지 않은 작업발판과 안전난간 미설치가 위험요인으로 제기되었다. 사업주는 작업자가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안전한 작업발판과 안전난간을 규정에 맞게 설치해야 한다. 또한 현장을 지휘·감독하는 관리감독자는 안전한 작업이 이뤄지도록 경계를 늦춰서는 아니 되며 근로자도 작업 시 위험에 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고는 어느 한 부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작업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미리 인지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착각하는 존재이다. 착각은 결정적인 순간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 곳에 몰입하게 되면 처음에는 집중했던 주변 상황이 시간이 흐르면서 흐릿해질 수 있다. 하루, 이틀 작업이 지속되면서 현장 곳곳에 존재하는 위험요소에 대해 어느 순간 무뎌지고 말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매사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문제점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지 부단히 생각해야 한다. 문제의식이 없으면 현장에 어질러진 물건들이 발에 걸릴 수 있는 위험, 맞물려 회전하는 기계에 말려들어갈 수 있는 위험에 무감각해지고, 인화물질 주변에서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용접함으로써 불꽃이 여기 저기 튀어 화재가 날 수 있는 위험도 곧 잊어버릴 수 있다. 안전한 작업을 위해서는 항상 문제의식을 잊지 않고 작업 전에 안전점검을 행하고, 작업 중에는 안전수칙을 준수하며, 작업 후에 정리정돈 하는 것을 습관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3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EBS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심리 실험을 한 결과를 방영한 적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남성 한 명이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뭔가 있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지나가는 많은 행인들은 무심하다. 약속된 두 번째 남성이 첫 번째 남성 옆에서 똑같은 행동을 한다. 그래도 행인들은 제 갈 길을 간다. 세 번째 남성을 투입해서 이번에는 세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한다. 그러자 행인들이 한 둘씩 관심을 표명하더니 이내 대부분의 행인들이 지나던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본다. 이어지는 영상에서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가 이렇게 말한다.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이 모이면 전환점이 되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터에서 사업주 등 경영자와 근로자, 관리감독자 등 세 사람이 합심하여 문제의식을 갖고 안전하게 되도록 변화되는 모습들이 우리 일터에 들불처럼 번져나가길 바란다. 그리하면 일터의 ‘안전문화’가 자연스레 조성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전문화’라는 말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조사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쓰였고,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계기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연구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문화를 한 인간이나 한 시대, 혹은 한 집단의 특정한 생활방식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안전’은 편안한 마음과 온전한 몸을 뜻한다. 고로 ‘안전문화’는 편안한 마음과 온전한 몸이 유지되도록 하는 생활방식인 것이다.

오늘도 귀중한 생명이 온전하고 편안하게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경영자들은 충만한 안전책임의식을 가지고 관리감독자들은 안전실무능력을 배양하며 근로자들은 안전실천행동을 행함으로써 사고 없는 일터가 구현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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