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사)안전문화포럼 회장·국제사이버대 안전보건공학과장

코로나 충격이 몰고 온 비대면 사회는 단순히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을 빠르게 하는 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 가속화에 ‘접촉포비아’ 현상이 더해지면서 경제 활동의 거리, 일과 노동 방식의 거리, 누군가와의 만남과 관계에서 새로운 거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디지털 기술은 생산과 소비, 유통 등 경제 전반에서 자동화·지능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위해 활용됐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은 비대면·비접촉 거리를 유지한 채 무중단 생산과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무인화와 온라인화로 강화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디지털 기술로 인한 일자리와 노동환경의 변화는 단순·반복적인 업무와 저숙련 노동자 대체가 특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비대면·비접촉 서비스로 전환키 위해 도입된 화이트칼라 로봇은 지식노동자의 일자리에도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또 임시적 조치로 도입된 원격근무와 재택근무 등 일하는 방식의 원격화는 향후 일상의 근무형태로 굳어질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을 꿰뚫는 키워드는 ‘거리의 탄생’이다. ‘생명’을 보호키 위해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경제와 사회 활동의 공백을 만들고 대신 ‘거리의 탄생’으로 인해 발생한 공백을 ‘디지털’이 채우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생명’뿐만 아니라 ‘생계’를 지킬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임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로 인한 안전문제는 거론되지도 않고 있다. 세계는 또 지금 ‘블랙스완’이 떼지어 날고 ‘회색 코뿔소’가 사납게 날뛰고 있다는 표현처럼 전 지구적 스케일의 위험이 일상이 됐다.

세계정책연구소(World Policy Institute) 대표이사인 미셸 부커가 2013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발표한 회색코뿔소의 용어는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경고로 이미 알려져 있는 위험요인들이 빠르게 나타나지만 일부러 위험신호를 무시하고 있다가 큰 위험에 빠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는 코뿔소가 몸집이 커 멀리 있어도 눈에 잘 띄며 진동만으로도 움직임을 느낄 수 있지만 코뿔소가 달려오면 두려움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거나 대처방법을 알지 못해 부인해버리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예측과 대비가 어려운 사태를 의미하는 ‘블랙 스완(black swan)’과는 차이가 있다.

실제로 지난 50년 동안 세계는 블랙스완 사건을 평균 5년에 한번 이상 경험했다. 이런 위험은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는(Unknown Unknowns) 미지의 위험이다.

하지만 이들 블랙스완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술의 발전과 산업화에 따라 인간이 깊이 관여된 ‘휴먼리스크’라는 점이다. 세계가 고도로 연결되고 상호 의존도가 커지면서 위험 발생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더욱 대형화되고 있다. 국가 시스템에 대한 회복력 강화방안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미지의 위험인가, 예견된 재앙인가.

감염병은 반복적으로 발생해 왔다. 이번 팬데믹은 예견된 위험 ‘회색 코뿔소’였으며 이 위험을 거대한 재앙으로 키운 것은 우리 자신이다. 

위험에 대한 과소평가, 미온적인 대비 등이 위험을 재앙으로 바꾼 원인이다. 우리는 사스(SARS), 메르스(MERS), 에볼라 등 치명적인 바이러스 전파 사태를 이미 겪었고 공중보건체계를 정비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험 예측은 인색했고 발생한 충격에 비해 대응력은 초라했다.

코로나19가 마지막 감염병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소멸하지 않고 적응하기 때문이다. 초연결된 세계에 우리는 ‘세계적 위험(Global Risks)’ 가능성을 직시하고 디지털 도구를 효과적으로 활용키 위해 공조할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가 만든 초연결성과 초지능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미래안전을 위해 다음과 같은 대응방안을 제시해 본다.

첫째 블랙스완에서부터 회색 코뿔소에 이르는 세계적 위험에 대응키 위해 미래안전 연구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낮추고 이를 토대로 디지털 기술 활용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코로나19 이후 도래할 완전한 디지털 사회에서 미래위험을 조기에 예방하고 효과적으로 통제키 위한 디지털 기술을 선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에서 ‘일상’, ‘산업현장’이라는 이름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매우 기본적이고 삶을 지탱하는 소소한 행위들을 디지털 인프라 위에서 이어갈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므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의식주 문제까지 도움을 받으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다른 사람들과의 정서적 교감까지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지금까지 경제성장과 사회적 편의성 제고 등 우리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보조적이고 부분적으로 사용했지만 앞으로는 놀고 즐기는 일상의 기본적인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모든 사회영역으로 확대돼 나타나는 위험에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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